1855(철종 6)년 8월 27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 南興壽(1813∼1899)에게 서울의 소식을 전하고, 말을 사서 보내주는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855(철종 6)년 8월 27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 南興壽(1813∼1899)에게 서울의 소식을 전하고, 말을 사서 보내주는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서두에 김진명이 지난번에 편지를 받은 후 외출하게 되어 답장하지 못했다고 하고,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서 감격하고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방의 식솔이 잘 지낸다는 소식에 위로가 되었지만, 종형제의 상을 당하여 슬픈 심경을 전하였다. 이어 김진명 자신의 소식을 전하였다. 자신의 부모님께서는 큰 변고를 면하셨고, 며느리와 손녀도 잘 지내고 있지만, 단지 종형이 客憂로 근심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편지의 내용 중에 하나는 서울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韓‧權 두 대감 및 노소 여러 대신들이 차례로 유배형에 처하였다가, 곧 풀려날 것이라고 하고 아울러 영남의 두 대감도 사면령을 받았음을 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말을 사 보내주는 문제에 대한 것이다. 지난번에 남흥수가 말을 사 보내 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말의 상태가 수척할 수도 있고 값도 비쌀 수도 있다면서 건장한 말을 사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상황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구매의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從君家의 新行이 다음달 20일로 정해졌으니, 그때 이 말을 사서 자신에게 방문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