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철종 4)년 2월 11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자식들의 勤行에 대해 의견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
1853(철종 4)년 2월 11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자식들의 勤行에 대해 의견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소식을 전한 이후에 달이 바뀌도록 다시 소식이 이어지지 않아 상대에 대한 그리움이 배로 간절하다고 하였다. 상대의 편지를 받고 안부가 편안함을 알아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김진명 자신은 부친이 항상 편찮고, 집안에 우환이 그칠 때가 없다고 하였다. 며느리는 병이 없지만, 완전히 좋을 때가 아닌 것 같아 가련하다고 하였다.
본론은 봄날에 상대를 한번 보아야 하지만, 상대가 아직도 소식이 없어 아쉽다고 전하였다. 勤行은 반드시 해야 하는데, 마침 도로가 전염병으로 차 있어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다음 달 초에 상대가 왕림하여 직접 대면하고 상의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의향을 물었다. 자신의 마을에 전염병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 조심하는 마음에 직접 만나는 것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營試가 다가오는데 營廬도 전염병에 一網할 것이라 하여 자신은 시험을 보러 가지 않을 것이라 하고, 또 품계가 높은 수령이 주관한다고 하지만, 망령된 생각은 하지 않겠다고 전하였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