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철종 3)년 1월 30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자신의 아들이 再行과 관련하여 찾아간다는 편지
1852(철종 3)년 1월 30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자신의 아들이 再行과 관련하여 찾아간다는 편지이다.
해가 바뀌어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심부름꾼을 통해 편지를 받아보고는 기쁘다면서 상대방과 며느리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아이의 죽음을 듣고 많이 놀랐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 장남의 건강상태가 어떤지를 물었다. 김진명 자신은 어버이를 모시고 세월을 보내고 있어 기쁨과 두려움이 교차하며, 아내와 아이가 병이 생겨 고통이 연달아 생겨나니, 근심이 된다고 하였다.
본론으로 자식이 감기에 걸려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먼 길을 가는 것이 감당할 수 없지만, 再行해야 하고 상대방이 거듭 오라고 하였기 때문에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서투른 일 처리에 부끄럽지만 상대방의 도움으로 해결하니, 이에 대해 감사하다고 하였다. 자신이 한번 만나서 회포를 풀고, 또 며느리도 보고 싶다고 하면서, 20~30일 사이에 가는 것을 도모하겠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형편상 오래 머물기는 어려우므로, 從叔의 상사일에 맞추어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族兄이 상대에게 부탁한 것은 후편에 보내주길 바라며, 아울러 족형이 보낸 書封 2개를 보낸다고 하였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