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12월 22일, 金熙奮이 상대방의 행차를 맞이하지 못한 아쉬움과 더불어 아우를 잃은 슬픔을 담아 보낸 답장 편지
1815년 12월 22일, 金熙奮이 상대방의 행차를 맞이하지 못한 아쉬움과 더불어 아우를 잃은 슬픔을 담아 보낸 답장 편지이다.
편지는 예식을 생략한다는 말로 시작된다. 김희분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상대방의 행차가 이미 강을 건넜으며, 인편을 통해 한번 만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는데, 방금 상대방의 안부편지를 받으니 슬프고도 감사하다고 했다. 편지를 읽고 추운 겨울에 조섭하시는 생활이 더치는 것을 면하였고 추위를 무릅쓰고 行役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되어 그리운 마음 또한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김희분은 神明에게 죄를 얻은 것이 오래되어 결국 아우 하나를 보전하지 못하고 白首에 외로이 홀로된 아픔을 토로했다. 아우를 매장하는 것은 겨우 마쳤고, 이 행차로 남매가 서로 만나니, 더욱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했다. 행차에 임박하여 많은 사연을 빠뜨리니 살펴봐달라고 하면서 답장 편지를 맺었다.
발신자 김희분(1760~1822)의 본관은 義城, 자는 舜叟, 호는 白山이다. 안동부의 속현인 봉화 海底에 거주했고, 八吾軒 金聲久(1641∼1707)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金鎭東이다. 李象靖의 문하에 출입했으며, 동암 류장원과 천사 김종덕에게도 학문을 배웠다. 문집 白山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