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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 류도원(柳道源) 외 1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778.4717-20160630.0714257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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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도원, 류장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작성시기 1778
형태사항 크기: 24.4 X 33.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78년 류도원(柳道源) 외 1인 서간(書簡)
1778년 5월 17일, 안동 임하류도원(柳道源)류장원(柳長源)이 공부하러 출입했던 스승이 상(喪)을 당하자 조문하고 돌아온 다음날 상대방의 안부를 다시 묻는 안부편지이다. 가을이 오면 스승에게 나아가 다시 좋은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778년 5월 17일, 柳道源柳長源이 世誼를 맺고 공부하러 출입했던 상대방이 喪을 당하자 조문하고 돌아온 이후 보낸 편지
1778년 5월 17일에 柳道源(1721∼1791)과 柳長源(1724∼1796)이 世誼를 맺고 공부하러 출입했던 상대방이 喪을 당하자 조문하고 돌아온 이후 보낸 안부편지이다.
도원 등은 집사께서 특별히 世誼를 맺음을 생각해주심에 감사하고 다행하다고 했다. 다만 상대방이 納拜를 허락하지 않아 당 아래에 머리를 조아려 성의에 보답하지 못했으니, 매우 부끄럽고 두렵다고 했다. 절하고 떠나온 지 밤을 지났는데, 상대방의 안부는 계속해서 신의 위호를 받고 계신지 여쭈었다. 도원 등은 탈 없이 집으로 돌아왔으나 신부가 궤연에서 곡을 하니 온 집안은 슬픈 감정이 배로 든다고 했다. 가을이 오면 다시 나아가 뵙고 앞으로 후학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실 것을 받고 싶다고 했다. 건강을 더욱 잘 돌보아 도원 등의 정성에 부합해달라고 하면서 안부편지를 맺었다. 추신에는 소산 어른과 별검 형에게 바빠서 안부를 빠트려 매우 한스럽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발신자 류도원의 본관은 全州, 자는 叔文, 호는 蘆厓이다. 참의 觀鉉의 아들로, 참의 升鉉에게 입양되었다. 아우 長源과 함께 李象靖의 문하에 출입했다. 道薦으로 明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칭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1790년(정조 14)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注釋學에 밝았으며, 저서로 『退溪先生文集攷證』·『日警錄』 등이 있고, 문집으로 『노애집』이 있다.
류장원의 자는 叔遠, 호는 東巖이다. 이상정에게 心學을 전수 받았으며, 金宗德 · 李宗洙와 함께 ‘湖門三老’로 불리고 있다. 용모가 준수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학문에 전념하여 경학, 제자백가, 예학에 두루 통하였다. 저서로는 『東巖集』·『溪訓類編』·『湖書類編』·『資警錄』·『四書纂註』·『常變通攷』 등이 있다.
이 편지는 영해 호지마을의 영양 남씨 집에 보관되었던 것이다. 내용으로 보아 안동 임하류도원류장원이 당시 스승으로 모셨던 안동 소호이상정을 조문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 보낸 안부편지로 짐작된다. 절하고 떠나온 지 밤이 지났다는 사실에서 영해로 추정하기에는 거리가 멀고, 또한 류도원류장원이상정의 문하에 출입했기 때문이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78년 류도원(柳道源) 외 1인 서간(書簡)

湖上 下執事。
瓢谷 柳生等 上候狀。省式謹封。

道源等。伏蒙
執事特念契誼。俛副私懇。不勝感幸之至。第以
尊命。不許納拜。未得稽首堂下。以謝
盛意。深用愧懼。拜違經宵。伏問
道體起居。一向神衛否。道源等。無撓歸巢。而新
婦拜哭几筵。擧家一倍悲感。奈何奈何。秋來。還
擬進謁。以卒承
嘉惠未前。惟伏祝
加護鼎茵。以副下誠。不備。伏惟
下察。謹再拜。上候狀。
戊戌 五月 十七日。下生服人 柳道源 長源 再拜。

小山丈前忙未爲候。別檢兄前亦闕。極恨極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