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7년 11월 4일 표곡에 사는 柳通源(1715~1778)이 손자를 돌려보내주기를 청하기 위해 호촌의 사돈에게 보낸 편지
1777년 11월 4일 표곡에 사는 柳通源(1715~1778)이 호촌의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병으로 소식을 전하지 못한 지가 반년이나 지났음에도 허물하지 않고 여러 번 서찰로 안부를 물어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펼치면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근래 혹한에 집안 여러 식구들은 다 평안한지 묻고 있다. 손부가 무사히 사내아이를 낳아 기쁜 마음은 한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산모의 건강이 걱정된다며 조섭에 방도를 다하겠다고 적고 있다. 자신은 병세가 근래에는 혼절을 하여 밤낮을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라 의원도 소용없이 하늘의 처분만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죄인에 대한 방면과 엄수가 교차하니 여론만 분분하고 관의 진의를 알지 못하여 두려운 마음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가운이 비색하여 근래에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어 장차 어찌 될는지 두렵다고 하면서 청기 골짜기에서 살다가 옮겨서 형제가 같이 모여 살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또한 손자를 돌려보내주기를 청하고 있다. 병중이라 직접 쓰지 못하고 대신 쓰도록 하였다고 하며 서찰을 마무리 하고 있다.
발급인 류통원은 본관이 全州로 아버지는 양파 류관현이다. 자는 叔亨, 호는 范溪이다. 가학과 정훈을 입어 독서에 열중하였으며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삼형제(通源, 道源, 長源)의 우애가 독실하여 三棣堂이란 편액으로 정자를 짓고, 金樂行, 金正漢, 金江漢, 金始樂등과 강론하였다. 죽은 뒤에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이 내렸으며 유고가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