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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년 김성탁(金聖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737.4717-20160630.07142570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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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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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성탁, 권만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37
형태사항 크기: 26 X 3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37년 김성탁(金聖鐸) 서간(書簡)
1737년 4월 22일 김성탁(金聖鐸)권만(權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순천(順川)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일과 동애(東厓) 어른의 장사 소식을 전하고 있다. 유곡(酉谷) 사형의 향임에 관한 일은 주선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자신도 이곳에 도착하여 수임에게 힘을 쓰고 있는데 결과는 아직 어떨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737년 4월 22일 霽山 金聖鐸(1684~1747)이 酉谷 査兄의 鄕任에 관한 일은 주선하고 있는가를 묻기 위해 江左 權萬(1688~1749)에게 보낸 편지
1737년 4월 22일 霽山 金聖鐸(1684~1747)이 江左 權萬(1688~1749)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러 날 함께 지내다가 먼지 돌아가게 되어 서운한 마음인데 근래 안부가 어떠한지, 萬夫, 玉汝등 여러분들의 안부는 어떤지 물으며 편지를 시작한다. 자신은 성 밖으로 나가니 새장을 벗어난 듯 쾌적하지만 분수에 미안한 점이 있어 마음으로 조심하고 있다고 한다. 順川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일과 東厓 어른의 장사 소식을 전하고 있다. 부중에서 柳令이 보낸 서찰을 보았는데 수신인에게 보낸 서찰도 있어 같이 즉시 전달하라고 하였으며, 酉谷 査兄의 鄕任에 관한 일은 주선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자신도 이곳에 도착하여 首任에게 힘을 쓰고 있는데 결과는 아직 어떨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자신이 바빠서 여러 사람들에게 개별적인 안부서찰을 하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발급인 김성탁은 본관은 의성, 자는 振伯, 호는 霽山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통달하여 인근의 각광을 받았다. 1735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이 되었고, 이어서 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737년 스승 葛庵의 신원소를 올렸다가 제주 旌義에 유배되었다. 그 뒤 광양으로 이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문장가로 조정의 총애를 받았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 『제산문집』 16권이 있다.
수신자 권만은 본관은 安東, 자는 一甫, 호는 江左이다.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정자로 재직 시 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장 柳升鉉을 도와서 공을 세웠다. 1746병조좌랑으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병조정랑이 되었다. 정조 때 창의의 공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강좌집』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37년 김성탁(金聖鐸) 서간(書簡)

一甫兄 謹候狀上。
憲陵令 記室。 ○七。 省式謹封。

累日相從。遽爾先歸。悵缺之懷。懷
久不釋。日間風寒陡獰。不審
旅況起居如何。萬夫玉汝僉兄
亦平安否。弟。一出城外快適。若脫
籠之對。但於分義。致有所不安者。
以此心竊蹙蹙。親舊中譏責
更如何。吳洪兩公及姜令之彦。雖
不能從。其眷眷指敎之意。則亦可
感也。相對時未可及此耶。鄕中不
幸。順天丈以初八日亥時違世於頃刻
之間。其爲驚怛。如何如何。東厓丈葬
事。臨時不無撓端。而畢竟克襄
云。亦可幸也。到府中見柳令書。書
中有所云云。且於兄亦有書。竝裏
封付於作廳。以爲因便傳達地。幸
爲之卽日施行。如何。酉谷査兄鄕
任事。其後有所周旋於城主對
耶。來此又力欲於首任。以爲善融
計。未知致果如何耳。餘。只祝
自愛。不宣。伏惟
下照。謹候狀。
丁巳四月卄二日。弟 聖鐸 頓。

孫朴兩兄及泮中僉兄前。忙未
奉問。同時無妨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