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8년 李栽가 영해의 朴廷杰에게 안부와 함께 손녀의 혼사가 禁令에 걸려 낭패라는 소식을 전하는 편지
1728년 李栽가 영해의 朴廷杰에게 안부와 함께 손녀의 혼사가 禁令에 걸려 낭패라는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
편지는 세자가 죽은 소식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재는 세자가 회복되기를 기다렸는데 돌아가시어 실망하게 되니, 종사와 신민의 망극함을 어찌할 것인가라고 했다. 근래에 친구를 통해 상대방의 병이 회복되었다고 듣고 멀리서 그리워하는 마음에 매우 위로가 되었는데, 뜻밖의 문안편지를 받아 아직까지 조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병은 조금 나아졌을 때 더해지는 것을 옛사람들이 경계한 바이니, 마음을 안정시키고 조섭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隣哉는 끝내 병으로 일어나지 못한 사실과 안팎의 가까운 사람들이 차례로 죽으니, 늘그막의 신세가 더욱 슬프고 쓸쓸하다고 했다.
이재는 겨울로 접어든 이후 겨우 스스로 지탱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근본이 견고하지 못하여 작은 병들이 문득 일어나서, 이 때문에 문을 닫고 날을 보내고 있으니, 세밑에 이르러 더욱 근심스러워 사는 재미가 없다고 했다. 손녀의 혼사는 날이 임박하여 禁令에 걸렸으니, 가난한 집의 온갖 일이 낭패됨을 상상할 수 있다고 했다.
말미에는 다시 만나고 싶은 간절함을 드러냈으며, 편지를 쓰니 슬픔이 더해진다고 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여 더욱 큰 복을 받길 축원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했다. 이재는 추록에서 상대방이 보내준 선물에 대해, "밥을 먹을 때 생선이 없은지 석달 뿐이 아닌데, 갑자기 멀리서 두 종류의 진미를 보내주시니, 채소만 먹던 장이 어찌 감사함을 견디겠습니까?"라는 표현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편지의 서두에 나오는 ‘貳極’은 두 번째 높은 자리라는 뜻으로 세자를 가리킨다. 여기서 죽은 세자는 효장세자[진종, 1719~1728]이다.
발신자 이재(1657∼1730)의 본관은 載寧, 자는 幼材, 호는 密菴이다. 아버지는 李玄逸이고, 어머니는 무안박씨 경력 玏의 딸이다. 벼슬은 주부에 이르렀으나 사직하고 오직 학문에만 몰두하여 성리학의 대가가 되었다. 후진양성에 힘써 李象靖·李光靖을 비롯한 많은 문인을 배출하였다. 『聖喩錄』·『錦水記聞』·『朱書講錄刊補』 등을 저술했으며, 문집으로 『밀암집』이 있다.
수신자 박정렬(1683~1746)의 본관은 무안, 자는 懷英, 호는 南浦, 아버지는 朴夏相이고, 寧海 출신이다. 갈암 이현일과 그의 아들 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며 성리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문집으로 『남포집』이 전한다.
발신자와 수신자는 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재의 어머니가 무안박씨이기 때문이다. 박정렬 역시 이재의 문하에 출입하여 이들은 사제 사이이기도 하다. 편지에는 이재의 주변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는 등 뜻하지 않게 돌아가고 있어,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이재의 쓸쓸한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