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년 9월 1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 南興壽(1813∼1899)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휴가를 얻으면 한번 찾아뵙겠다는 내용의 편지
경○년 9월 1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 南興壽(1813∼1899)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휴가를 얻으면 한번 찾아뵙겠다는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 서두에 상대방이 있는 곳에 돌림병이 돌아 亨叔兄 누이의 상을 치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하였다. 상대의 심부름꾼이 와서 상대가 편안하다는 소식에 기쁘다고 하였다. 상대의 장남이 잘 모시고 있고, 상대방의 집에 가 있는 며느리와 세 손녀도 잘 지낸다하여 기쁘다고 하였다. 김진명 자신은 여름에 앓던 병이 가을이 되어 조금 나았고, 아이들이 잘 지내지만, 어린 손녀가 瘦病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부인의 병환이 그치지 않음을 걱정하였다. 또 인근 냇가에서 돌림병이 돌았다가 사라졌는데, 자기 집에는 피해상황이 없음을 전하였다.
본론은 김진명이 남흥수와 직접 만나기 위해 일정을 알리는 내용이다. 이전에 상대방에게 가보려고 했지만 돌림병으로 가지 못하였고, 다음 달 며느리가 돌아올 때 만나보려고 했는데, 節祀가 겹쳐서 또 만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달에 20일 간의 휴가를 얻게 된다면 나아가고자 하지만, 마편 때문에 못갈 수도 있음을 전하고 있다. 편지의 말미에 明紬를 구해 보내는 것은 짜는 사람도 없고 가격도 비싸 水上人에게 부탁했으니 다음에 보내겠다는 내용이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