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고종 15) 4월에 남유영이 산송관련 사안으로 盈德縣 관아에 올린 所志
1878년(고종 15) 4월에 남유영이 문중 사람 12명과 연명하여 盈德縣 관아에 올린 所志이다. 남유영은 현재 영덕군 영덕읍 화수리에 있는 화림산에 있는 선산을 두고 산송을 벌이고 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정황은 다음과 같다.
남유영 어머니 산소는 현재 부남면의 화림산에 있었다. 그런데 원래 그곳은 영덕현 고곡리에 사는 劉亢旭이란 자의 조상 분묘가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남유영은 그 산지를 관리하고자 그에게 여러 차례 부탁하였고, 논 2마지기와 동전 150냥을 주고 이를 허락받아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 이것은 그곳 四山을 모두 매입한 것이었다. 하지만 산세가 편협하여 주변에 繼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덕현 주등리에 사는 劉龜煥이라는 자가 몰래 偸葬한 것이다. 그가 투장한 지점은 우리 산소와 보수(步數)는 말할 것도 없고, 서로 무덤 앉은 것이 교차하여[交案] 상충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劉龜煥의 집으로 가서 무덤을 파내라고 하자, 그도 머리를 숙이고 속히 이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관아에 呈訴하여 처결 받고자 하였다. 그런데 劉龜煥이 적반하장으로 몰래 관아에 사실을 날조하여 呈訴하여, ‘엄히 신칙하여 쫓아 보내라.’라는 처결까지 받은 것이다.
이상과 같이 분쟁의 경위를 말한 남유영은 해당 지역의 지형을 조사하여 공정히 처결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盈德縣 수령은 12일에 刑吏에게 지시하는 처결을 내리길, "지형을 그려서 조사해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명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