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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남유영(南有{金+永}) 산송관련 소지(所志)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B.1878.4777-20160630.0714231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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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남유영, 영덕현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작성시기 1878
형태사항 크기: 93.0 X 52.0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8년 남유영(南有{金+永}) 산송관련 소지(所志)
1878년(고종 15) 4월에 남유영영덕현 관아에 올린 所志이다. 남유영은 현재 영덕군 영덕읍 화수리에 있는 화림산에 있는 선산을 두고 주등리에 사는유귀환(劉龜煥)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상세정보

1878년(고종 15) 4월에 남유영이 산송관련 사안으로 盈德縣 관아에 올린 所志
1878년(고종 15) 4월에 남유영이 문중 사람 12명과 연명하여 盈德縣 관아에 올린 所志이다. 남유영은 현재 영덕군 영덕읍 화수리에 있는 화림산에 있는 선산을 두고 산송을 벌이고 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정황은 다음과 같다.
남유영 어머니 산소는 현재 부남면화림산에 있었다. 그런데 원래 그곳은 영덕현 고곡리에 사는 劉亢旭이란 자의 조상 분묘가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남유영은 그 산지를 관리하고자 그에게 여러 차례 부탁하였고, 논 2마지기와 동전 150냥을 주고 이를 허락받아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 이것은 그곳 四山을 모두 매입한 것이었다. 하지만 산세가 편협하여 주변에 繼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덕현 주등리에 사는 劉龜煥이라는 자가 몰래 偸葬한 것이다. 그가 투장한 지점은 우리 산소와 보수(步數)는 말할 것도 없고, 서로 무덤 앉은 것이 교차하여[交案] 상충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劉龜煥의 집으로 가서 무덤을 파내라고 하자, 그도 머리를 숙이고 속히 이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관아에 呈訴하여 처결 받고자 하였다. 그런데 劉龜煥이 적반하장으로 몰래 관아에 사실을 날조하여 呈訴하여, ‘엄히 신칙하여 쫓아 보내라.’라는 처결까지 받은 것이다.
이상과 같이 분쟁의 경위를 말한 남유영은 해당 지역의 지형을 조사하여 공정히 처결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盈德縣 수령은 12일에 刑吏에게 지시하는 처결을 내리길, "지형을 그려서 조사해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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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78년 남유영(南有{金+永}) 산송관련 소지(所志)

寧海兼民南有{金+永}。再拜仰達于
兼城主閤下。伏以。民之慈山。在於府南花林山是如。其時營窆右山顝後。有本邑古谷劉亢旭爲名漢先墳。故以同山守護之意。累次懇乞。以二斗落
畓果一百五十兩錢文給之。而竟至受諾。得以入葬。而四山永爲買得是乎乃。右山局勢偏狹。更無左右前後之繼窆矣。不意本縣酒登劉龜煥爲名漢。
未知何日。潛自偸埋。故驚惶往審。則步數之近遠。不暇論辨。而山高而谷深。且彼高而此低。交案相衝是如。苟無禁山之法則已焉。而若有法意。則爲人子
痛迫之情。斷不容忍。故往于渠家。百端曉喩。俾之掘去。則右漢亦知理屈。首服從速移埋。故將欲呈官決處矣。右漢賊反下杖。暗葬之不足。而又此暗呈
官司。誣捏搆訴。至有嚴飭逐送之題音。噫嘻。偏聽生奸。自古然矣。而右漢之白地誣呈。其非擠人而反受者耶。玆敢具由仰訴爲去乎。伏乞
洞燭敎是後。圖形量尺。公明題下。無至向隅之歎。千萬爲只爲。
行下敎是事。
兼城主處分。
戊寅四月日。南有鉉南有鎭南有鎛南有鏽南有鏛南朝瀷南朝淑南朝溟南朝海南朝涵南祖{氵+昇}南祖洛等。

兼官[押]。

圖形摘奸以
來向事。
十二日。
刑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