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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호계서당(虎溪書堂) 통문(通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918.4717-20150630.07302600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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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작성주체 호계서당, 정산서당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18
형태사항 크기: 95 X 56.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예천 저곡 안동권씨 춘우재고택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대제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8년 호계서당(虎溪書堂) 통문(通文)
1918년 3월 2일에 호계서당(虎溪書堂)에서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과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의 불조례(不祧禮) 설행 문제로 정산서당(鼎山書堂)으로 보낸 통문(通文)이다. 두 사람의 불조례의 설행과 묘당에 모시는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13일에 모이자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상세정보

1918년에 虎溪書堂에서 金聖鐸金樂行의 不祧禮 설행 문제로 鼎山書堂으로 보낸 通文
1918년 3월 2일에 虎溪書堂에서 霽山 金聖鐸(1684~1747)과 九思堂 金樂行(1708~1766)의 不祧禮 설행 문제로 鼎山書堂으로 보낸 通文이다. 통문에서 말하길, 김성탁은 가까이는 南嶽 金復一(1541~1591)의 衣鉢을 계승하였고 멀리는 退溪 李滉의 연원을 이어받은 분이다. 따라서 그의 학문 계통은 바로 영남지역 유학의 나침반이다. 그러한 氣脈을 서로 전하여 斯文이 추락하지 않았고, 학문을 받들어 모범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낙행에 대해서는 현재 그 자손들의 움직임을 반대하고 있다. 즉 김낙행 큰집에서 親屬이 이미 끝났다고 하며 장차 위폐를 祧墓한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유림의 公議를 생각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지 그 문중의 사사로운 일이 아닌데, 그렇게 한다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의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통문에서 말하길 ,최근에 이러한 의견을 龜溪書堂에서 먼저 주창하고, 高山書堂에서 통문을 돌리면서, 서로 호응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데, 한 廟堂에 두 분의 위패를 不遷位으로 모시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下位에 해당하는 분의 예를 조금 굽혀 上位에 해당하는 분의 예를 펴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의견을 제시한 호계서당은 이번 달 13일에 같은 자리에 모여서 이러한 의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8년 호계서당(虎溪書堂) 통문(通文)

通文。
右爲通諭事。伏以。我霽山金先生。近襲南嶽之衣鉢。遠溯陶山之淵源。統緖有的允爲吾道之南車。氣脉相傳。匹似家學之西山。斯文賴而不墜。承學
仰而矜式。迄玆二百有年所矣。寢廟芬苾之地。愀然如見。而吾黨塵刹之報。無以自伸。近見九思先生長房之親屬已盡。位牌之祧墓將行。俛仰之聲響。寢
然已邈。而遠邇之愴感。實所難遏。第其始事之日。實有合論底事。而惟本家之膠守謙僞經庭輸告。不量儒林之公議。把作門戶之私事。何能無起訝於
輿人之心。迺者。龜溪之柬書。首先唱起。高山之輪示。踵接和應。雖其主論之差有異同。而可見彛裏之無間彼此也。但一廟之二位不遷。事涉難愼。無寧屈
情於下位。而得伸於上位。庶乎其寡過耶。玆以今十三日。將行不祧之禮。而奉稟于禮學僉君子。迺其損益綿蕝。第當仰聽於當日會席。伏願。濟濟光臨。以
伸衛道之誠。千萬幸甚。
右通文。
鼎山書堂。 戊午三月初二日。虎溪。都有司。進士。柳淵博。齋有司。幼學。金翰洛李壽必。製通。李鍾夔金翊模。寫通。柳秉鎬李心求。會員。柳必永金永洛金秀洛李{王+泰}柳淵愚鄭翰逵李壽琰。前參奉金炳洛柳德珪李兢淵金鶴輝
參奉南敬熙。幼學。李宅洛金弘植金學圭權永喆柳觀鎬。前參奉金秉植金鎭應。幼學。柳淵楫李賢珪南炳奎金翰周鄭源逵柳淵昌金世秉河景淵權秉燮裵淵載張秉龍柳晦植
朴圭陽李鍾濬權孟淵柳孝植李性求。前侍講。金鴻洛。幼學。柳廣鎬權準華柳東根李羲植權禹鉉金宗秉李鉉敎金庸洛柳璋植河中煥柳東斗。等。
禮泉郡
鼎山書堂僉座下入納。安東虎溪通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