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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홍기일(洪起一)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917.0000-20150630.062525700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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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홍기일, 이목호
작성시기 1917
형태사항 크기: 21.4 X 47.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7년 홍기일(洪起一) 서간(書簡)
1917년 6월 1일에 홍기일(洪起一)이 혼사와 관련하여 이목호(李睦鎬)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봄여름 간에 받은 편지는 인편이 없어서 답장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사부인과 상대방 형제의 안부를 묻고, 형제의 상(喪)이 끝나니 비통한 마음이 들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태수(太叟) 모자(母子)의 안부를 묻고, 어린 손자를 보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또한 혼인에 대해 언급하면서 4, 5년을 기다려 할 생각이며, 일전에 의양(宜陽)선재(善哉) 집에 가니 노인의 묵은 병이 갑자기 발작하여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여러 곳에 홍수가 심한데 상대방 쪽은 어떠한지와 작황은 어떠한지 물었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917년 6월 1일, 洪起一이 婚事와 관련하여 李睦鎬에게 보낸 편지
1917년 6월 1일에 洪起一이 婚事와 관련하여 李睦鎬(1885~?)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中錫의 次養子인 李睦鎬南陽洪氏와 혼인하였는데, 南陽洪氏는 바로 洪起一의 딸이다. 따라서 洪起一李睦鎬의 장인이다. 먼저, 春夏 간에 받은 2통의 편지에 대해 인편이 없어서 답장하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였다. 이어 날씨가 더운 이때 査夫人과 李睦鎬 형제의 안부를 묻고, 鴒原(형제)의 祥期가 이미 끝나니 李睦鎬의 비통한 마음이 그지없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또 太叟 母子가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洪起一 자신은 苦海를 겪으면서도 세월을 보내는 것은 다만 頭角이 점점 이루어지고 있는 어린 손자 때문인데 손자가 배우기를 너무 싫어하니 이것은 얄미운 부분이라고 하였다. 이어 혼인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규수의 나이가 열두 살이니 4, 5년 뒤를 기다려 천천히 할 생각이었다고 하였으나 집안의 형편과 좋은 官合을 감안하여 풍속을 쫓아 빨리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일전에 宜陽善哉 집으로 갔더니 흉년 근심은 모두 없었으나 노인이 숙환이 갑자기 발작하여 식사를 제대로 하기 어려웠으니 이것이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이번 여름 水災가 모든 곳에서 혹심한데 李睦鎬 쪽은 어떠한지 작황은 어떠한지 물으면서, 걱정이 크다고 하였다.
李睦鎬는 자가 德乃이고, 본관이 眞城으로, 李秉淳의 曾孫인 李中錫의 次養子이다. 생부는 李中錫의 동생인 李中鎔이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7년 홍기일(洪起一) 서간(書簡)

春夏間二度書。得於無何。沒便未遂謝覆。甚
愧恨。便后有日。謹惟炎天
萱闈節宣神護萬福。省餘棣履淸裕否。
領原祥期已終。孔懷悲怛。想何有極。太叟母子。亦
何樣。周爲馳戀。起一。苦海經歷。依是昔狀。而姑遣
時月者。惟以穉孫之頭角稍成。來頭眿望。將在於
此。而厭學太甚。亦一生憎處已。書中所言。非君
之知我深者。惡能若是耶。然未知誰家閨。而亦
未知其凡百何如。此則君豈不熟思深量。而及此
耶。郞年十二。吾之素念。則將待四五年後。徐徐
爲計。而顧吾事勢。井臼無任。可謂時日尙難。而
姑此徊徨者。將待此一路。然則閨年不可不爲
四五年相間。然後可任爲中饋之主。且以官合言
之。則壬寅癸卯生甚好。而此皆副望。而叶兆矣。雖
破百計。而不得不從俗作太早計。故使此賓替送。
此亦婚主。君須商確左右之。詳細回示。切企耳。日
前去宜陽善哉家。
俱無歉憂。而但其
老人宿症闖發。失
胃難食。是悶耳。
今夏水災。無處不酷。而
貴邊何如。所作何如。實
非淺念。從近或無相
遌之路也。願願耳。餘。
姑不宣謝。
丁巳 六月 初吉。婦翁 洪起一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