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10월 17일에 李中錫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자형에게 보낸 편지
1911년 10월 17일에 李中錫(1854~1912)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자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眞寶李氏世譜』에 따르면, 李中錫의 부친인 李晩禧는 사위가 둘이 있었는데 곧 金銘壽와 南憲朝이다. 수신자가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구인지는 미상이다. 먼저, 인편이 계속 있었다고 할 수 있으나 서신 왕래가 없었던 것이 이미 몇 년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어떤 때는 인편이 왕래하는 때를 모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알기는 하였으나 바쁜 일이 있었다고 하면서, 자형이 깊이 책망하실 줄로 생각되니 죄송스럽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제 돌아온 조카아이를 통하여 자형의 건강이 상하지 않았고 자형의 아들 형제도 여독이 없으며 그 밖의 모든 가족들이 한결같이 평안하다는 것을 들었으니,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李中錫 자신은 세상사는 재미도 없고 苦海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하였으며, 오직 大小家가 한결같이 평안한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다. 앞집의 姪婦가 瘇氣로 인해 오랫동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 며느리가 추위를 만나 고생하는 상황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內行을 갈지 못 갈지에 대해 이런 상황에서 감히 말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하였다. 그 며느리도 다리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고 하므로 차라리 멀리 있으면서 안 보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元塘의 注書가 죽은 일에 대해서는 차마 얘기를 꺼낼 수 없을 정도이나 남은 가족들이 무탈하다고 하니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방문 계획이 봄이 되면 가을을 기다리게 되고 가을이 되면 다음해 봄을 기다리게 된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으나, 쇠약한 기력과 침노하는 온갖 병으로 인해 먼 길을 가는 것이 겁이 나서 그만두게 되니 몹시 심약해졌음을 느끼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푸근한 겨울날을 기약하고 있으나, 기필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