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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이시호(李是鎬)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902.0000-20150630.06252570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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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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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시호, 이중석
작성시기 1902
형태사항 크기: 19.3 X 120.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2년 이시호(李是鎬) 서간(書簡)
1902년 2월 4일에 이시호(李是鎬)가 도산서원의 사당에서 일어난 변고와 관련하여 감옥에 갇혀 아직 석방되지 못하고 있는 이중석(李中錫)에게 석방을 위한 노력을 알리고자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당시 도산서원의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변고에 의해 감옥에 갇힌 것이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902년 2월 4일, 李是鎬가 陶山書院 廟變과 관련하여 석방되지 못하고 있는 李中錫에게 석방 노력에 대해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1902년(광무 6) 2월 4일에 李是鎬가 陶山書院 廟變과 관련하여 석방되지 못하고 있는 李中錫(1854~1912)에게 석방 노력에 대해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李中錫은 陶山書院의 院任으로 있던 시기에 尙德祠의 退溪 位牌가 도난당한 일이 발생하여 수감된 바 있었다. 이 廟變에 대한 기록이 곧 『陶山書院廟變時日記』인데, 이에 따르면 이 시기 이중석은 陶山書院의 齋任을 맡고 있었는데 전년도 11월 3일에 禮安 수령이 禮吏를 보내 책임을 물어 三任을 압송해 오게 하니 書院 측에서 다음날 모임의 논의 결과를 보고자 하였으나 三任이 자발적으로 출두한 바 있다.
먼저, 慰安祭의 절차가 儒生들의 청원으로 시행되게 되었으니 임금의 큰 은혜에 감사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올라온 소식을 지금 들으니 三任 어르신들이 아직 석방되지 못했다고 하기에 무슨 곡절이 있느냐고 물었다. 三任이 자발적으로 옥에 갇히게 된 것은 事體를 보존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고 보면 書院의 일이 이미 해결되었으니 三任이 동시에 석방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하였다. 觀察使가 임의대로 하기 어렵다면 掌隷院에 보고하여 석방해야 하는데 관찰사가 이미 체차되었으니 매우 낭패라고 하였다. 지금 시점에서는 임금이 三任의 일에 대해 통촉하고 있다고 할 만하지만 관찰사의 보고가 있기 전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고 하였다. 신임 관찰사가 근래 부임한 듯하나 전임 관찰사가 미결한 사안을 신임 관찰사가 임의대로 처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속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 대한 고충을 토로하면서, 비록 주선할 방도가 있더라도 사정을 모르니 어찌하겠느냐고 하였다.
일전에 大邱主事 姜鎰 氏에게 電報로 탐문해 보았으나 아직 회답이 없다고도 하였다. 만약 속사정을 파악하게 된다면 無罪 放送하라는 뜻으로 本官과 관찰사에게 서신을 보낼 생각이라고 하였다. 요컨대, 관찰사의 보고가 올라오기 전에는 도리가 전혀 없다고 하면서 주야로 힘을 써도 끝내 좋은 대책이 없다고 하였다. 이어 이중석 및 함께 갇혀 있던 다른 院任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하였다. 지금은 이중석 등이 保放된 상태에 있다고 하는데 處所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 물었으며, 안심하고 몸조리를 잘하라고 당부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2년 이시호(李是鎬) 서간(書簡)

叔主前 上候書。

先院事變。亘萬古所
未聞所未有也。侄▣▣▣變
想千里之外。五內崩潰。
更無一刻寄世之心。而
況在叔侍之地乎。
天聽孔昭。慰安節次。
特下於衿紳齊籲之
士也。感祝洪恩。無以攸措。
今得上來傳聞。則三任
丈姑未蒙放云。是何委
折。三任三就囚。出於存事
體之地。則院事旣已就平。
而三任三同日放送。事係
當然。而觀察若難任。無以
爲三。則報告掌隷院。而
已見遞。事甚良貝。今
則可謂自上洞燭三罪人。而
觀察報告之前。更無道
理。新察似日間▣任。而洞
察未決之事。新察難
可任意爲之。且不無疑訝
於其間。亦不無自下軋訴
之慮矣。世間裡許。寂然不
知。雖有周旋之道。不知裡
許。奈何。昨者電探於大邱
主事姜鎰氏。而姑無回
答。若知裡許。則將無罪
放送之意。得札付送於本
官。而又得書於觀察計爾。
這間此中裡許。叔主想必
入聽。而四面周章。觀察
報告上來之前。萬無道
理。晝宵用力。終無善策。
此將奈何。在於惶悚中。歲
已積矣。何以堪耐。只切無
益之貢慮已耳。伏
不審春峭
旅體候倘不致添於積
費三餘。同館諸任丈近節
若何。伏溯區區無任遠忱之
至。從姪。客狀別無大何。而
衙候積阻。焦菀無狀。侄
欲歸未歸已久。而家事不
知至於何境。甚悶悶耳。
今則方在保放中云。處
所果在何處。而安心調章。
若何。事必有就緖之日
矣。餘。不備上候。
壬人 二月 初四日。五從侄 是鎬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