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2월 4일, 李是鎬가 陶山書院 廟變과 관련하여 석방되지 못하고 있는 李中錫에게 석방 노력에 대해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1902년(광무 6) 2월 4일에 李是鎬가 陶山書院 廟變과 관련하여 석방되지 못하고 있는 李中錫(1854~1912)에게 석방 노력에 대해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李中錫은 陶山書院의 院任으로 있던 시기에 尙德祠의 退溪 位牌가 도난당한 일이 발생하여 수감된 바 있었다. 이 廟變에 대한 기록이 곧 『陶山書院廟變時日記』인데, 이에 따르면 이 시기 이중석은 陶山書院의 齋任을 맡고 있었는데 전년도 11월 3일에 禮安 수령이 禮吏를 보내 책임을 물어 三任을 압송해 오게 하니 書院 측에서 다음날 모임의 논의 결과를 보고자 하였으나 三任이 자발적으로 출두한 바 있다.
먼저, 慰安祭의 절차가 儒生들의 청원으로 시행되게 되었으니 임금의 큰 은혜에 감사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올라온 소식을 지금 들으니 三任 어르신들이 아직 석방되지 못했다고 하기에 무슨 곡절이 있느냐고 물었다. 三任이 자발적으로 옥에 갇히게 된 것은 事體를 보존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고 보면 書院의 일이 이미 해결되었으니 三任이 동시에 석방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하였다. 觀察使가 임의대로 하기 어렵다면 掌隷院에 보고하여 석방해야 하는데 관찰사가 이미 체차되었으니 매우 낭패라고 하였다. 지금 시점에서는 임금이 三任의 일에 대해 통촉하고 있다고 할 만하지만 관찰사의 보고가 있기 전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고 하였다. 신임 관찰사가 근래 부임한 듯하나 전임 관찰사가 미결한 사안을 신임 관찰사가 임의대로 처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속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 대한 고충을 토로하면서, 비록 주선할 방도가 있더라도 사정을 모르니 어찌하겠느냐고 하였다.
일전에 大邱主事 姜鎰 氏에게 電報로 탐문해 보았으나 아직 회답이 없다고도 하였다. 만약 속사정을 파악하게 된다면 無罪 放送하라는 뜻으로 本官과 관찰사에게 서신을 보낼 생각이라고 하였다. 요컨대, 관찰사의 보고가 올라오기 전에는 도리가 전혀 없다고 하면서 주야로 힘을 써도 끝내 좋은 대책이 없다고 하였다. 이어 이중석 및 함께 갇혀 있던 다른 院任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하였다. 지금은 이중석 등이 保放된 상태에 있다고 하는데 處所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 물었으며, 안심하고 몸조리를 잘하라고 당부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