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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김익락(金翼洛)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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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익락, 이중석
작성지역 경상북도 예천군
작성시기 1901
형태사항 크기: 21.6 X 3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1년 김익락(金翼洛) 서간(書簡)
1901년 11월 7일에 김익락이 도산서원 상덕사에서 벌어진 묘변 등과 관련하여 이중석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이번에 퇴계선생 위패도난 사건으로 서원의 재임인 당신께서 감영에 가시게 되니 참으로 걱정스럽다고 하고 있다. 또한 이달 10에 유생들이 감영에 정소하고 상경하여 호소하는 유생들이 이미 길을 떠났다는 것을 알렸다. 끝으로 자기 집안의 혼인 날짜가 어그러진 사실을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901년(광무 5) 11월 7일에 金翼洛이 陶山書院 尙德祠에서 벌어진 廟變 등과 관련하여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
1901년(광무 5) 11월 7일에 金翼洛이 陶山書院 尙德祠에서 벌어진 廟變 등과 관련하여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翼洛은 본관이 義城으로, 愚軒 金養鎭의 아들이다. 李中錫李秉淳의 曾孫인데, 바로 金養鎭의 딸인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다. 따라서 金翼洛李中錫은 서로 처남매부지간이다.
먼저, 근래의 사건에 대해 통곡만 할 밖에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하였다. 또 천하 만세에 어찌 이렇게 지극한 변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였다. 金翼洛 자신은 소식을 들은 날에 즉시 달려가 봤어야 했으나 상복차림으로 가기가 어려웠다고 하면서 매우 죄송하다고 하였다. 三堂이 구속되는 등의 일은 마음에 둘 필요가 없으나 李中錫이 노쇠해져가는 기력으로 사태를 감당하기 어려울 듯 하므로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道會의 일자가 이달 10일로 정해졌는데 향후 절차를 어떻게 조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였으며, 監營에 呈訴하고 上京하여 호소하는 儒生들이 이미 출발했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이 편지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는 변괴란 이달 1일에 벌어진 陶山書院 廟變을 가리킨다. 이는 尙德祠에 모셔져 있던 退溪 先生의 位版이 도난당한 사건으로, 『陶山書院廟變時日記』에 그 자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日記에 따르면, 이 시기에 李中錫은 陶山書院의 齋任을 맡고 있었다. 三堂은 書院의 三任을 일컫는 말로 보이는데, 日記에 따르면 이달 3일에 禮安 수령이 禮吏를 보내어 책임을 물어 三任을 압송해 오게 하였으며 書院 측에서 다음날 모임의 논의 결과를 보고자 하였으나 三任이 자발적으로 출두하였다. 金翼洛은 이어 자신의 병세, 병든 어버이 봉양, 병으로 거의 죽게 된 아내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날마다 애를 태울 따름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이미 정한 혼인 날짜가 저절로 어그러지게 된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1년 김익락(金翼洛) 서간(書簡)

忙拜疏上。
稽顙。近日事。痛哭之外。尙何言哉。東方
之雲氣盡矣。南士之命脉絶矣。天下萬世。
豈有如許之極變怪乎。聞奇之日。卽當趨走。
而曳衰之行。有難自力。罪悚曷已。三堂就囚
本府。撞丁厄會。固不必置懷。而向衰氣力。
似難堪任。區區慮仰。實不淺淺。道會日子。
定以今初十。向後節次。曷以措處。呈營上
京。想已發行矣。罪弟。近以臘後發癠。方
伏枕呻����。頑忍者固宜不死。而自憐則深
矣。老人調將。一味添劇。濱死荊憂。轉到
極頭。日用只是焦煎而已。婚日知已指期。而今則
想不攻而自破矣。窮家計算。不諧者亦若是耶。
替送姪兒。或可爲愈於己乎。餘。病伏艱艸。只
此不備。伏惟
恕諒。
辛丑 至月 初七日。婦弟罪人 金翼洛 拜疏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