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11월 17일, 洪起一이 府獄에 수감되어 있는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901년(광무 5) 11월 17일에 洪起一이 府獄에 수감되어 있는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秉淳의 曾孫인 李中錫의 次養子 李睦鎬는 南陽洪氏와 혼인하였는데, 南陽洪氏는 바로 洪起一의 딸이다. 따라서 洪起一과 李中錫은 서로 사돈지간이다. 이하의 내용은 모두 이달 1일에 벌어진 陶山書院 廟變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尙德祠에 모셔져 있던 退溪 先生의 位版이 도난당한 사건으로, 『陶山書院廟變時日記』에 그 자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 시기에 李中錫은 陶山書院의 齋任을 맡고 있었다. 먼저, 지난번에 자신이 보낸 편지를 李中錫이 보았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병으로 山中에 칩거하고 있느라 소식을 제때 듣지 못하여 근간에 터진 廟變을 어떻게 조처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고 하였다. 근래 李中錫이 禮安府에 就理하여 대죄한지 오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이는 옛 聖人이 이른 ‘비록 죄인의 몸으로 갇혀 있긴 했었지만 그의 죄가 아니었다.[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는 말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평소 익숙하게 道學을 논하고 義理를 강한 李中錫에게 자신의 충고는 필요치 않으나, 儒學을 위해 죽고 退溪를 위해 죽는다면 한스러울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인자한 하늘이 위에 있으니 필시 이러한 극한적인 상황에는 이르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역경 속에서도 늘 태연했던 옛날 군자의 자세에 유의하라고 당부하였다. 다만 추운 날씨에 대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