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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홍기일(洪起一)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901.0000-20150630.062525700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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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홍기일, 이중석
작성시기 1901
형태사항 크기: 23.1 X 35.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1년 홍기일(洪起一) 서간(書簡)
1901년 11월 17일에 홍기일(洪起一)이 관아 감옥에 갇혀 있는 이중석(李中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번에 보낸 편지를 받았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자신은 병으로 칩거하고 있느라 도산서원 사당의 위판이 없어진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근래 상대방이 예안부(禮安府)에서 처분을 기다린지 오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태연하라고 당부하고 추운 날씨에 대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901년 11월 17일, 洪起一이 府獄에 수감되어 있는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901년(광무 5) 11월 17일에 洪起一이 府獄에 수감되어 있는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秉淳의 曾孫인 李中錫의 次養子 李睦鎬南陽洪氏와 혼인하였는데, 南陽洪氏는 바로 洪起一의 딸이다. 따라서 洪起一李中錫은 서로 사돈지간이다. 이하의 내용은 모두 이달 1일에 벌어진 陶山書院 廟變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尙德祠에 모셔져 있던 退溪 先生의 位版이 도난당한 사건으로, 『陶山書院廟變時日記』에 그 자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 시기에 李中錫은 陶山書院의 齋任을 맡고 있었다. 먼저, 지난번에 자신이 보낸 편지를 李中錫이 보았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병으로 山中에 칩거하고 있느라 소식을 제때 듣지 못하여 근간에 터진 廟變을 어떻게 조처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고 하였다. 근래 李中錫禮安府에 就理하여 대죄한지 오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이는 옛 聖人이 이른 ‘비록 죄인의 몸으로 갇혀 있긴 했었지만 그의 죄가 아니었다.[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는 말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평소 익숙하게 道學을 논하고 義理를 강한 李中錫에게 자신의 충고는 필요치 않으나, 儒學을 위해 죽고 退溪를 위해 죽는다면 한스러울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인자한 하늘이 위에 있으니 필시 이러한 극한적인 상황에는 이르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역경 속에서도 늘 태연했던 옛날 군자의 자세에 유의하라고 당부하였다. 다만 추운 날씨에 대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1년 홍기일(洪起一) 서간(書簡)

宣府 課免 旅執。

向書想入覽矣。病伏山中。不能以時承聞。未知
爾間事奇之如何措處矣。近方聞
座下就理府邸。待罪日久。此則古聖所謂雖在縲
紲之中。非其罪也。其如命與天何。竊惟左右平日論
道講義之熟。已有定力於胸中。容何有待於區區
賤夫之言。而今日爲座下言之。則爲吾道而死。爲
夫子而死。固何恨焉。而況夫仁天在上。必不使至此極
也耶。惟願益勵志氣。勿以自家作怨悔。以古君子
處困履險。隨遇而安。爲意也。但日寒如此。定非衰
暮者可堪。中夜風雪。馳懷轉苦爾。家豚尙未
還。得時甫去便。草草不宣狀。惟
照亮。
辛丑 至月 十七日。査弟 洪起一 拜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