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1월 21일에 金奎三이 자신의 동생의 葬禮 및 여러 근황을 전해 주기 위해 사돈인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99년 1월 21일에 金奎三이 자신의 동생의 葬禮 및 여러 근황을 전해 주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건대, 金奎三은 梧溪에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金奎三은 豊山金氏 인물로 보인다. 李中錫(1854~1912)의 둘째 사위가 豊山金氏인 金熺洛인데, 金奎三이 金熺洛의 부친이고 따라서 수신자는 李中錫이 되고, 발급연도는 1899년(광무 3)으로 추측된다.
먼저, 守勢 때 받은 편지에 대해 답장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자신의 정이 야박할 뿐만 아니라 작년 가을 뒤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의사가 없어졌기 때문에 인편이 있어도 편지하지 않았고 편지지를 앞에 두고도 말이 막혔다고 하면서, 사돈의 이해를 구하였다. 아마도 金奎三이 동생을 잃었던 일을 두고 이렇게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새해를 맞아 사돈과 그 가족들, 사돈의 숙부, 喪中에 있는 조카 형제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동생을 잃은 데 대한 애통한 심경에 대해 언급하였다. 다만 조금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부분은 남겨진 아이가 무탈하고 어린 손자를 膝下에 안고 있는 부분이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아직 쾌차하지 않았는데 근래 감기로 그 모자가 함께 앓고 있다고 하면서 불쌍하다고 하였다. 자신의 형님이 작년 여름 이후로 늘 병석에 계시면서 갖가지 질병이 더해지고 있다고 하였다. 동생의 葬禮와 관련하여 어수선한 심경을 다시 전하고, 사돈이 移寓한 뒤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야 하지만 자신이 몇 년 동안이나 쓸데없는 일로 하루도 집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돈에게 보내 주지 못했다고 하였다. 끝으로, 자신의 손자(상대의 외손자)를 보러 왕림해 달라고 청하였다. 추신에서는, 后谷 上舍 査丈의 喪事는 자신의 집안에도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吾黨의 운명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면서 개탄스런 마음을 표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