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3월 30일, 李晩翼이 근황을 교환하고 세상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97년(광무 1) 3월 30일에 李晩翼이 근황을 교환하고 세상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해가 넘도록 만나지 못하고 봄도 이미 저물었으니 술에 취하고 미친 듯이 그립다고 하였다. 이어 따스한 봄 날씨에 服中에 있는 李中錫과 가족들, 堂內 여러 사람들이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李晩翼 자신은 2월 초부터 우연히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을 얻었는데 처음에는 毒感인 것 같더니 점점 고질병을 이뤄 痰滯와 頭痛 등 온갖 병이 번갈아 침노하고 있다고 하였다. 결국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처자식으로 하여금 他鄕에서 전전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春窮이 극심해져 가나 끝날 날이 머지않았는데 모든 일을 장차 어떻게 요리하려 하는지 물었다. 國慶이 寓所에서 병을 얻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난번에 들었는데, 지금은 이미 쾌차하여 돌아갔느냐고 물었다. 봄 초에 온 斗 從을 통해 世稿를 간행하자는 논의에 대해 들었다고 하면서, 이미 敦定하여 일을 시작했는지 물었다. 이어 文丹 어르신이 지난날 당한 낭패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자신은 일언반구도 이 집안을 끌어들인 것이 없었으며 중간에 근거 없는 말로 弄假成眞하여 잘못도 없는 어르신이 이러한 낭패를 겪게 되었다고 하면서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였다. 세상은 안정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다만 邪學이 크게 일어나서 가까운 곳에서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醴泉의 龍門寺에 어디에서 온지 모르는 자들이 많게는 30여 인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또 倭船이 날마다 洛東江에 왕래하며 오르내리면서 곡물을 사 가는데 그 수량이 몇 만 섬이 될지 모른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곡물 가격이 점점 급등할 것이므로, 평안한 시절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남편을 잃은 며느리를 근래 데려 왔는지 물었다. 추신에서는, 允明[李中喆]과 世卿[李中奕]이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그들에게 편지하고 싶으나 병으로 하지 못하니 이런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