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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이만익(李晩翼)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97.0000-20150630.06252570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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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익, 이중석
작성시기 1897
형태사항 크기: 32.8 X 40.1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7년 이만익(李晩翼) 서간(書簡)
1897년 3월 30일에 이만익이중석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과 주변, 그리고 상대와 그 주변의 근황을 물은 뒤에 초봄에 두(斗) 종을 통해 세고 간행에 대해 들었는데 일을 시작했는지를 물었다. 한편, 사학이 크게 일어나서 가까운 곳에서도 가끔 발생한다고 하였다. 특히 예천의 용문사에 30명의 신원미상의 사람들이 찾아왔고, 또 왜선이 날마다 낙동강을 오르내리며 곡물을 사 가는데, 그 수량이 몇 만 섬이 될지 모른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곡물 가격이 점점 급등할 것이므로, 태평한 시절을 바라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효심

상세정보

1897년 3월 30일, 李晩翼이 근황을 교환하고 세상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97년(광무 1) 3월 30일에 李晩翼이 근황을 교환하고 세상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해가 넘도록 만나지 못하고 봄도 이미 저물었으니 술에 취하고 미친 듯이 그립다고 하였다. 이어 따스한 봄 날씨에 服中에 있는 李中錫과 가족들, 堂內 여러 사람들이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李晩翼 자신은 2월 초부터 우연히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을 얻었는데 처음에는 毒感인 것 같더니 점점 고질병을 이뤄 痰滯와 頭痛 등 온갖 병이 번갈아 침노하고 있다고 하였다. 결국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처자식으로 하여금 他鄕에서 전전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春窮이 극심해져 가나 끝날 날이 머지않았는데 모든 일을 장차 어떻게 요리하려 하는지 물었다. 國慶이 寓所에서 병을 얻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난번에 들었는데, 지금은 이미 쾌차하여 돌아갔느냐고 물었다. 봄 초에 온 斗 從을 통해 世稿를 간행하자는 논의에 대해 들었다고 하면서, 이미 敦定하여 일을 시작했는지 물었다. 이어 文丹 어르신이 지난날 당한 낭패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자신은 일언반구도 이 집안을 끌어들인 것이 없었으며 중간에 근거 없는 말로 弄假成眞하여 잘못도 없는 어르신이 이러한 낭패를 겪게 되었다고 하면서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였다. 세상은 안정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다만 邪學이 크게 일어나서 가까운 곳에서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醴泉의 龍門寺에 어디에서 온지 모르는 자들이 많게는 30여 인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또 倭船이 날마다 洛東江에 왕래하며 오르내리면서 곡물을 사 가는데 그 수량이 몇 만 섬이 될지 모른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곡물 가격이 점점 급등할 것이므로, 평안한 시절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남편을 잃은 며느리를 근래 데려 왔는지 물었다. 추신에서는, 允明[李中喆]世卿[李中奕]이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그들에게 편지하고 싶으나 병으로 하지 못하니 이런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7년 이만익(李晩翼) 서간(書簡)

圭範從 哀座下。
省式。跨歲阻晤。春又已暮。面面懸慕之情。如醉如狂。近日
春氣和暖。未諗
侍奠餘哀履萬支。閤覃均吉。堂內諸節。一例平
安否。悲溸區區。匪比尋常。從。自二月初。偶得無何之
祟。初若毒感。轉成沈綿。痰滯也頭痛也。一身之
微。百病交攻。自量衰敗。更無復起之望。臥念許多
負罪之中。狐首之願。畢竟未獲。使此弱妻穉子。棲屑
他鄕。此何運數。悼歎悼歎。春窮轉極。終期不遠。凡
百將何以料理耶。貢念無已。向聞國慶得病於寓所。甚
至危境矣。今已快復還侍耶。春初斗從來。聞世
稿刊出之論矣。或已敦定始事否。文丹丈前日良貝。此
何貌樣。當初事變之日。從。無一言半辭之援引此家。
而不過以中間無根之說。弄假成眞。無瑕之地。致
此見敗。愧歎奈何。時耗間無所撓。而京邸物情。可謂
太平萬歲云。但邪學大起。此近亦往往有之。而
之龍門寺。不知自何方來者。
多至三十餘人。倭船逐日往來
於洛江上下貿穀。不知幾萬石云。若此
不已。則谷價似有漸至蹬踊之慮矣。
烏可望平安時節耶。喪婦近或
率來耶。凡百荒凉。想觸目惱心。必不
以愈久而可忘。然天實爲之。謂之何
哉。偶因國慶家作人去。伏枕胡草。不
備疏禮。
丁酉 三月 三十日。三從 晩翼 拜。

允明世卿從。亦幷得平吉否。欲書而病未
能此懷。傳布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