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11월 24일, 愚軒 金養鎭이 자신의 次子婦가 사망한 데 대해 비통한 마음을 전하고 緬禮의 진행 경과를 알려 주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96년(건양 1) 11월 24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자신의 次子婦가 사망한 데 대해 비통한 마음을 전하고 緬禮의 진행 경과를 알려 주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은 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訃告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데 대해 자책하는 마음을 표하였다. 服中의 이중석이 극히 추운 날씨에 痛毒으로 인해 여러 날 위중하였던 것에 대해 놀라고 걱정스런 마음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고, 밤사이 조리한 건강 상태가 어떠하냐고 안부를 물었다. 이 증상은 바람을 피하고 개고기 즙이 좋다고 하면서, 백방으로 조섭하여 오래도록 병이 끌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하였다. 또 자신의 딸이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여러 아이들도 모두 병이 나지 않았는지 안부를 물었다.
김양진 자신은 거의 죽을 나이가 되어 갑자기 次子婦가 요절하니 슬플 뿐만 아니라 그녀의 賢淑함이 묻히게 된 것을 생각하면 매우 애통하다고 하였다. 더구나 5달 동안 그녀를 구호하던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전날보다 좋지 못하고 온 집안의 老少가 모조리 독감에 걸려 콜록콜록하는 소리가 이어지므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롭다고 하였다. 몇 년 동안이나 緬禮를 준비해 왔는데 지난달 29일에 破墓해 보니 壙內에 물이 차지는 않았기 때문에 널을 움직이지 못하여 그대로 덮어 두고 開正 뒤에 移奉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집안의 喪慘이 이와 같은 상황이다 보니 新墓와 舊墓를 새로 쓰고 면례하는 일을 어떻게 치를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부모님의 묘소를 집 앞에 占穴하였는데 또 남들이 이러쿵저러쿵하니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이중석과 만날 수 있다면 상의할 터인데 服中의 상대가 어찌 뜻대로 올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