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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류연즙(柳淵楫)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95.0000-20150630.06252570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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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연즙, 이중석
작성시기 1895
형태사항 크기: 21.2 X 4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5년 류연즙(柳淵楫) 서간(書簡)
1895년 11월 6일에 범암(汎菴) 류연즙(柳淵楫)이 아들을 잃은 이중석(李中錫)에게 보낸 위문편지이다. 류연즙이중석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잡다한 일로 흰머리가 점점 늘어간다고 하였다. 자신의 노친은 지산(芝山) 자형(姊兄)의 초청으로 며느리를 맞는 예식을 보러 가셨다고 하였다. 류연즙이중석에게 오랫동안 조문을 가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며 봄에 갈 수 있길 기약한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95년(고종 32) 11월 6일에 汎菴 柳淵楫(1853~1933)이 아들을 잃은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위문편지
1895년(고종 32) 11월 6일에 汎菴 柳淵楫(1853~1933)이 아들을 잃은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위문편지이다.
汎菴 柳淵楫는 東屛 李彙正의 외손이다. 柳淵楫의 부친인 柳章鎬李彙正의 첫째사위이다. 李彙正李中錫에게 再從祖가 된다. 먼저, 자신은 차마 말할 수 없는 말로 편지를 보내고 싶지 않았고 李中錫는 차마 꺼내지 못할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위문편지를 보내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건강 유지를 위해 수명의 장단을 洞觀하여 彭祖와 殤子를 동일시했던 延陵子와 東門吳를 스승으로 삼으라고 당부하였다. 이 구절을 통해 李中錫가 아들을 잃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의 아들 李達鎬가 이해에 사망하였던 것이다. 이어 喪을 당한 이래로 기거 생활을 오히려 수습하고 奠饋도 禮法대로 하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柳淵楫 자신은 노친께서 다행히 큰 병은 면하셨으나 지난달에 芝山 姊兄의 초청을 받고 그 며느리를 맞는 예식을 보러 가셨다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고 하면서, 몹시 늙으신 몸으로 오랫동안 집을 벗어나 계시므로 두렵다고 하였다. 또 잗다란 일에 매몰되어 조금도 재미가 없는데 머리털에 서리가 내리는 것이 근래 들어 갑절로 심하다고 하였다. 또 나이에 비해 노쇠함이 심하니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오랫동안 한 번 조문하러 가려고 마음먹었으나 쉽지가 않다고 하면서, 봄으로 기약하고는 있는데 지장이 없을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5년 류연즙(柳淵楫) 서간(書簡)

省式。範哀乎。吾不欲作不忍言之詞。君不
欲聞不忍提之言。姑且闕略之。不今宿火更
燃乎。天下之撞値此毒者多矣。如古之延
陵子東門吳猶能洞觀脩短一視彭殤
以自寬而寬人。哀座亦當犯以爲師。勿以
無益而害有益。如何。遭値以來。
興寢猶能自乂。
奠饋亦能如禮否。
大襄寃瘞。次第過行。劍水刃山。稍復捲
去。猶可以爲强排自遣之地矣。爲之切切悲溯
之至。外再從。老親氣力。幸免大諐。前月
爲芝山姊兄所速。往看甥婦延禮。姑未返次。
篤老久外第。有兢惕耳。惟婚人僅保。餘
累姑遣。而冗狀一味陸陸。殊無好況。鬢
際霜華。入近倍甚。不榮便衰。固非異
事。而未秋先凋。寧非可歎耶。一慰之計。
係是積擬。而亦難易辦。只當退俟春
間。而亦不知無碍掣也。邇來涔寂之中。
得此兄主枉臨。得遂數日譚讌之樂。而歸
後依然寥閴。可悵耳。臨行忙甚。万万。不
宣狀上。惟
哀照。
乙未 至月 六日。外再從 柳淵楫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