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고종 32) 11월 6일에 汎菴 柳淵楫(1853~1933)이 아들을 잃은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위문편지
1895년(고종 32) 11월 6일에 汎菴 柳淵楫(1853~1933)이 아들을 잃은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위문편지이다.
汎菴 柳淵楫는 東屛 李彙正의 외손이다. 柳淵楫의 부친인 柳章鎬는 李彙正의 첫째사위이다. 李彙正는 李中錫에게 再從祖가 된다. 먼저, 자신은 차마 말할 수 없는 말로 편지를 보내고 싶지 않았고 李中錫는 차마 꺼내지 못할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위문편지를 보내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건강 유지를 위해 수명의 장단을 洞觀하여 彭祖와 殤子를 동일시했던 延陵子와 東門吳를 스승으로 삼으라고 당부하였다. 이 구절을 통해 李中錫가 아들을 잃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의 아들 李達鎬가 이해에 사망하였던 것이다. 이어 喪을 당한 이래로 기거 생활을 오히려 수습하고 奠饋도 禮法대로 하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柳淵楫 자신은 노친께서 다행히 큰 병은 면하셨으나 지난달에 芝山 姊兄의 초청을 받고 그 며느리를 맞는 예식을 보러 가셨다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고 하면서, 몹시 늙으신 몸으로 오랫동안 집을 벗어나 계시므로 두렵다고 하였다. 또 잗다란 일에 매몰되어 조금도 재미가 없는데 머리털에 서리가 내리는 것이 근래 들어 갑절로 심하다고 하였다. 또 나이에 비해 노쇠함이 심하니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오랫동안 한 번 조문하러 가려고 마음먹었으나 쉽지가 않다고 하면서, 봄으로 기약하고는 있는데 지장이 없을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