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고종 31) 12월 4일에 金翼洛이 근황을 전하고 토지를 매득하는 문제로 부탁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
1894년(고종 31) 12월 4일에 金翼洛이 근황을 전하고 토지를 매득하는 문제로 부탁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翼洛은 본관이 義城으로, 愚軒 金養鎭의 아들이다. 李中錫은 李秉淳의 曾孫인데, 바로 金養鎭의 딸인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다. 따라서 金翼洛과 李中錫은 서로 처남매부지간이다.
먼저, 뜻밖에 지난달 27일에 李中錫이 작성한 편지를 받았다고 하였으며 편지를 통하여 李中錫의 모친이 연이어 평안하시고 李中錫도 평안하며 추운 날씨에 海上(바래미)에 갔다가 무사히 돌아오고 여독도 없으며 延禮도 순조롭게 거행되어 모든 상황이 만족스러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누님이 근래 재미가 좋아서 앓던 병도 쾌차하였을 줄로 생각되니, 新婦의 孝敬 덕택일 것이라고 하였다. 金翼洛 자신은 어버이의 병환이 전에 비해 호전된 감이 있으나 완쾌될 기약이 없고 자신도 堂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쳐 한 달 동안 신음하던 끝에 근래 또 頭風症으로 인해 수습하지 못하고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다만 나머지 대소 가족들은 별탈이 없이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믿을 만한 것은 없으나 요컨대 모두 좋은 소식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좋지 못한 시절에 태어난 한탄이 지극하다고 하였다. 이어 땅을 매입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동생을 보내 봤더니 주인이 너무 높은 가격을 불렀다고 하면서 성급하게 구매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또 韓 某에게 속히 통지하여 주인의 의향을 알아보게 한 뒤에 날짜를 약정하여 美齋에 모여 만나서 商量해 처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