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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94.4717-20150630.06252570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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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양진, 이중석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94
형태사항 크기: 22.1 X 39.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4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1894년(고종 31) 6월 11일에 김양진(金養鎭)이 조카의 장례(葬禮)와 관련하여 이중석(李中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또 다시 조카를 잃어 늘그막의 외로운 심사를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더구나 각 집의 우환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으니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편지의 다음 부분에서는 사곡(蛇谷)의 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조카의 장례와 관련된 얘기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94년(고종 31) 6월 11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조카의 葬禮와 관련하여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
1894년(고종 31) 6월 11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조카의 葬禮와 관련하여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김씨는 바로 金養鎭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지난번에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 이중석이 근일에 계속해서 묏자리를 찾는 일로 온종일 고생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걱정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 요사이 사부인이 연이어 평안하신지, 服中에 사부인을 모시고 있는 이중석이 건승한지, 권솔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김양진 자신은 또 다시 조카를 잃어 늘그막의 외로운 심사를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더구나 각 집의 우환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으니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편지의 다음 부분에서는 蛇谷의 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조카의 葬禮와 관련된 얘기로 보인다. 추신에서는 葬事擇日紙를 아울러 보낸다고 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4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圭範 侍服史。

向於兒歸。知近日連以尋山之役。鎭日勞攘。
爲之慮念。未委日來
慈闈體力連衛。侍餘服履珍相否。眷節
亦何如。勞溯更切。拙。老去情景。又失阿侄。
孤孑無可言。各家憂故鱗生。愁悶愁悶。蛇谷
事。差奴來後。有根母子趁曉來告言。日沒
入葬之時。未知何以區處。而爲先陶差。自宅下
彌縫云。故不得已。依渠言。使兒子躬往回送。
此後事幾。當隨便通之耳。擇日紙。趁爲
差出。而朴友所托。未詳枯骨經故。姑置云耳。
但葬日迫近。凡百曷以頭緖。從近使一力更通
爲望。餘。忙艸。不具。
甲午 六月 十一日。服人 養鎭 頓。

擇日紙幷送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