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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이수린(李守麟)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94.0000-20150630.0625257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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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수린, 이중석
작성시기 1894
형태사항 크기: 25.3 X 44.1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4년 이수린(李守麟) 서간(書簡)
1894년 8월 23일에 이수린(李守麟)이 혼인 관계를 맺은 감회와 이달호(李達鎬)의 귀가 일정 등에 대해 전해 주기 위해 이중석(李中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수린이중석은 사돈지간이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894년 8월 23일, 李守麟이 혼인 관계를 맺은 감회와 李達鎬의 귀가 일정 등에 대해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94년(고종 31) 8월 23일에 李守麟이 혼인 관계를 맺은 감회와 李達鎬의 귀가 일정 등에 대해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守麟李中錫은 서로 사돈지간이다. 이중석의 아들인 李達鎬의 부인이 驪州李氏인데, 여주 이씨이수린의 딸이다. 먼저, 李中錫을 모시고 싶은 바람이 간절했는데 혼인관계를 맺게 되어 이중석이 방문해 주어 매우 기뻤다고 하였다. 이어 이중석이 무사히 귀가하였는지 묻고, 이중석의 모친과 이중석, 숙부, 堂內 여러 친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수린은 편모와 숙부의 안부를 전하고 자신은 사위와 딸의 昏禮를 치르고 난 뒤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 잘 교육시키지 못한 자신의 딸을 이중석 집안에 시집보내고 보니 家事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염려스럽다고 하면서 죄송한 마음 간절하다고 하였다. 이에 반해 이중석의 아들이자 자신의 사위인 이달호는 특출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온 집안에 봄기운이 생기고 있다고 하면서, 사십 나이만에야 인간 세상의 재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 이달호가 자신의 집에서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몸이 지금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끝으로, 지금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데 더욱 한겨울 세찬 바람과 같으니 언제나 좋은 시절이 올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柒室之憂를 표출하였다.
李中錫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4년 이수린(李守麟) 서간(書簡)

講舊新姻。重疊情好。益切掃門之願。而
一枕承眷。尤當如何哉。世驗〖險〗路遐。無事抵達
耶。向旆之後。耿耿一念。尙不弛于中也。伏未
審殷秋
萱幃鼎茵保無損害。
省下學履一向珍衛。
玩府査丈万重。堂內諸節勻吉否。幷伏溯區區
無任之至。査弟。惟幸偏省姑依。猶候粗遣。而
是則經此擾惱。自多愆苦。私悶曷喩。有女
不敎。敢此奉托於長者之門。深恐不足以效
箕帚。愧悚殊切。而推以允郞之奇偉。自今
滿室生春。行年四十。始知人世間滋況者哉。留
床未幾。遽告歸省。姑不强挽。卽當率去。以
攄未盡諸蘊。而身今不健。故終未遂意。以阿季
護送於中程。在家貢慮。不啻万丈
赤境。難以筆舌可道。近聞石大人來
月間。已陳于胎峯云。自今爻像。如坐針
氈。尤若大冬風稜。那當得春和日暖
時節也。甚憂于恭忱而已。餘。不備書
禮。情照。
甲午 八月 二十三日。査弟 李守麟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