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고종 30) 10월 그믐날에 金翼洛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
1893년(고종 30) 10월 그믐날에 金翼洛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翼洛은 본관이 義城으로, 愚軒 金養鎭의 아들이다. 李中錫은 李秉淳의 曾孫인데, 바로 金養鎭의 딸인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다. 따라서 金翼洛과 李中錫은 서로 처남매부지간이다.
먼저, 만남이 쉽지 않더라도 편지도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고 하면서, 『詩經』의 "비록 나는 가지 못하나 그대는 어찌 오지 않는가."라는 말은 참으로 먼저 깨달은 말이라고 하였다. 늘 이곳에 온 사람을 통해 안부를 듣고 있으나 격조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그립고 궁금한 마음은 줄어든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다지 춥지 않는 겨울 날씨에 李中錫의 모친, 李中錫, 堂內 여러분들이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특히 누님이 어린 애들을 데리고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次女의 婚期에 대해 지난번에 中坪의 申 君을 통해 겨울에 婚事를 치르게 되어 장차 擇日할 것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어제 孟敏從을 만나 내달 11일로 정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것이 사실인지 물었다. 이와 같은 흉년에 해를 연이어 치르는 큰일을 장차 어떻게 처리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근심스런 마음만 간절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金翼洛 자신은 수확과 澆奠으로 인해 가을과 겨울 이래로 눈코 뜰 새가 없으니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고 하였다. 季君 집안의 혼삿날이 12월 12일에 있는데 모든 상황이 군색함을 면치 못할 것 같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하였다. 浙江에 묏자리를 정하는 일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李中錫도 들어서 알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내년 봄 이후로 묏자리를 정하여 完封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별지에서는, 匠木을 보낸다고 하였으며 郎布는 이곳에서 구하여 보내고자 하는데 장사꾼이 아직 실어 오지 않았기 때문에 25냥을 아울러 보내니 받아 달라고 청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