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4월 16일, 愚軒 金養鎭이 묏자리를 정하는 문제, 儒林 회의 등과 관련된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93년(고종 30) 4월 16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묏자리를 정하는 문제, 儒林 회의 등과 관련된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은 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險勢에 몇 달 동안 격조한 것이 삼추와 같이 길게 느껴져 그립고 답답한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뜻밖에 사람이 오고 겸하여 이중석의 편지를 받게 되니 정답게 만난 것처럼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더구나 査夫人이 연이어 평안하고 이중석도 평안하며 慶이 어미가 어린 것을 데리고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때에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돌림병은 본래 온 세상에 유행하는 것이고, 더구나 유행하는 곳과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으니 재앙이 아주 가까운 것과는 견줄 바가 아닌 것 같다고 하였다.
김양진 자신은 안으로는 우환에 쌓여 있고 밖으로는 돌림병이 겁나서 三春에 겪은 일들이 마치 劫界를 거친 듯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근래 돌림병이 또 다시 치성해져 종식될 기약이 없으니 근심스런 마음을 형언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어 묏자리를 정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世賢 형제는 이미 허락한 줄 알겠는데 유독 景五만이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 그저 성의를 모아 간절히 빌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세한 내용은 미상이다. 府에서 있었던 儒林의 모임은 본래 부득이한 일인데 듣기로 모임 자리가 자못 원만하였으나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씨가 다시 튈 조짐이 생김을 면치 못했다고 하니 儒林의 일이 늘 이런 식이라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屛虎是非와 관련된 내용으로 보이는데, 역시 자세한 내용은 미상이다. 보릿고개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그 전에 接濟하는 것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해를 보내는 것과 같이 힘겹다고 하였다. 보리 작황이 좋다고 할 수 있으나, 일전에 내린 雹雨가 큰 피해를 주지 않았는지 물었다. 일전에 이중석이 海上(바래미가 아닌 寧海로 보인다.)에서 돌아오는 길에 혹 자신을 들르지 않을까 싶어 날짜를 계산하며 기다렸는데 이중석이 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南 室이는 과연 잘 있는지 물었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