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고종 29) 4월 12일에 南朝旭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晩祿(1868~?)에게 보낸 편지
1892년(고종 29) 4월 12일에 南朝旭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晩祿(1868~?)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인 南朝旭은 李秉淳의 손자인 李晩禧의 친동생 李晩祿의 장인이다. 이 편지의 내용으로 보더라도 장인이 사위에게 보낸 편지이므로, 수신자는 李晩祿이 된다. 먼저, 李晩祿이 부지런히 편지해 줌에도 南朝旭 자신은 세속의 잗다란 일에 골몰되어 한 번도 답장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지없이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어, 보릿고개가 심한 시기에 李晩祿의 모친과 숙부 내외, 자제들, 同堂 여러분의 안부를 물었다. 南朝旭 자신은 식량 부족이 심각하다고 하였다. 더구나 길 옆에 새로 寓居하고 있는데 백성들이 절규하는 시대 상황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근래에는 또 鄕事로 인해서 전임 수령이 移任되고 盈德에서 자신의 동생을 대신 잡아가 아직 석방해 주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南朝旭은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자신의 두 다리를 잘라 내어 아예 산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야 했다고 자책하였다. 혼삿날은 당초 이달 8일로 정했으나 21일로 물렸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물었다. 부조할 것이 없어 부끄럽다고 하면서, 乾魚 1尾만 올리니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 또 李晩祿이 어느새 삼년상을 두 번이나 치렀는데도 자신이 직접 가서 조문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慶弔事에 있어 하나의 버려진 사람에 불과하다고도 하였다. 끝으로, 막내딸과 손자가 홍역으로 인해 움직이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한다고 하면서,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