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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남조욱(南朝旭)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92.0000-20150630.06252570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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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남조욱, 이만록
작성시기 1892
형태사항 크기: 22 X 40.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2년 남조욱(南朝旭) 서간(書簡)
1892년(고종 29) 4월 12일에 남조욱(南朝旭)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이만록(李晩祿)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조욱은 사위인 이만록에게 보릿고개가 심한 시기에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최근 향사(鄕事)로 인해 전임 수령이 다른 곳으로 옮기고 영덕에서 자신의 동생을 잡아가 아직 석방해 주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혼삿날이 8일에서 21일로 바뀐게 맞는 지 묻고, 이만록에게 삼년상을 두 번 치렀는데 직접 조문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92년(고종 29) 4월 12일에 南朝旭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晩祿(1868~?)에게 보낸 편지
1892년(고종 29) 4월 12일에 南朝旭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晩祿(1868~?)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인 南朝旭李秉淳의 손자인 李晩禧의 친동생 李晩祿의 장인이다. 이 편지의 내용으로 보더라도 장인이 사위에게 보낸 편지이므로, 수신자는 李晩祿이 된다. 먼저, 李晩祿이 부지런히 편지해 줌에도 南朝旭 자신은 세속의 잗다란 일에 골몰되어 한 번도 답장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지없이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어, 보릿고개가 심한 시기에 李晩祿의 모친과 숙부 내외, 자제들, 同堂 여러분의 안부를 물었다. 南朝旭 자신은 식량 부족이 심각하다고 하였다. 더구나 길 옆에 새로 寓居하고 있는데 백성들이 절규하는 시대 상황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근래에는 또 鄕事로 인해서 전임 수령이 移任되고 盈德에서 자신의 동생을 대신 잡아가 아직 석방해 주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南朝旭은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자신의 두 다리를 잘라 내어 아예 산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야 했다고 자책하였다. 혼삿날은 당초 이달 8일로 정했으나 21일로 물렸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물었다. 부조할 것이 없어 부끄럽다고 하면서, 乾魚 1尾만 올리니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 또 李晩祿이 어느새 삼년상을 두 번이나 치렀는데도 자신이 직접 가서 조문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慶弔事에 있어 하나의 버려진 사람에 불과하다고도 하였다. 끝으로, 막내딸과 손자가 홍역으로 인해 움직이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한다고 하면서,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2년 남조욱(南朝旭) 서간(書簡)

宜仁 靜座 執事。
新浦 謹謝候書。
一書二書。勤且厚矣。而淟汨塵冗。一
未修謝。愧赧何極。謹未審際玆葽夏。
麥嶺如天。
北堂壽候莫無添損節。阮府內外
節宣穩過。寶樹春枝。當夏成陰。
有卓立之漸。同堂僉候。色色均慶否。心
乎愛矣。何日忘之。拙。險歲經過。不足仰
煩。而所謂桂玉之歎。桂猶可也。而玉無奈也。況
新寓道傍。嗷嗷爻象。不可形言。仰屋自
笑。此何平生。近又以鄕事。舊官移任盈邑。
代捉舍仲。尙未蒙放。反以思之。恨未得斫此
兩足而不出山外也。婚日。初以今八日。而退以卄
一日云。果否。信伻無物以助。恨恨。只以乾魚
一尾仰呈。愧汗則深矣。壻君居然之頃。二經
三霜。而未得晉唁。是不過慶弔上一棄物耳。
更何言哉。末女及兒孫。以疹憂。或起或臥。
悶悶耳。女阿尙無略漸耶。老措大渴
望。只在此矣。餘。愁亂不宣。伏惟。
壬辰 四月 旬二日。拙 南朝旭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