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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이만계(李晩桂)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80.0000-20150630.06252570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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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계, 이중석
작성시기 1880
형태사항 크기: 20.8 X 71.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0년 이만계(李晩桂) 서간(書簡)
1880년 9월 27일에 류천 이만계이중석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이 아들을 본 일과 초산부사로 있는 이만기를 찾아뵙고 그 일대를 유람한 일에 대해 소득이 적지 않다고 하고, 아울러 그가 평양과 압록강을 유람한 사실에 대해 사마천 못지않다고 하였다. 특히 북쪽은 오랑캐 땅과 접하고 있어서 언어와 복제가 달라 매우 우습고 괴이한 것이 많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여행 중에 견문한 것을 훗날 자신에게 들려 달라고 하였다. 한편, 가을 과거 시험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응시하는데, 그 속에 도앙희원도 끼여 있어 매우 부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구피갑(狗皮匣)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1차 작성자 : 김효심

상세정보

1880년 9월 27일, 柳川 李晩桂가 得男과 遠遊에 대해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고 몇 가지 고향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80년(고종 17) 9월 27일에 柳川 李晩桂(1845~1920)가 得男과 遠遊에 대해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고 몇 가지 고향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가을 기운이 더욱 높아져서 李中錫을 그리는 마음이 정히 깊었는데 이러한 즈음에 李中錫의 편지가 갑자기 도착하니 매우 위안이 되고 감사했다고 하였다. 더구나 편지를 읽고서 객지에 있는 李中錫이 평안하고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令監[新巖 李晩耆]이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 시기 李晩耆楚山府使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 축하할 것은 李中錫이 아들을 본 경사가 있고 또 멀리 유람하고픈 소원을 이룬 것이라고 하면서, 금년에 李中錫이 거둔 소득이 적지 않다고 하였다. 李中錫이 수천 리를 다닌 곳에 대해 비록 자세하게 알 수는 없어도 平壤은 번화하다는 명성을 독차지하고 있고 鴨綠江은 南北의 영역을 구분하니 모두 큰 구경거리라고 할 만하다고 하였다. 이는 젊은 시절에 남으로 江淮 지방을 두루 답사한 司馬遷보다 못하지 않다고 하였으며, 더구나 오랑캐 땅과 접하고 있으니 다른 언어와 다른 服制가 우습고 괴이한 것이 많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李中錫이 보고 들은 것을 모조리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가 훗날 돌아온 뒤에 자신에게 들려 달라고 하였다. 아마도 李中錫이 이 시기에 楚山府使로 있는 李晩耆를 찾아뵙고 그 일대를 유람한 일이 있는 듯하다. 李晩桂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나 어버이께서 항상 기력이 좋지 못하니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의 마음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애가 탄다고 하였다. 농사가 대흉년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하였으며, 秋科에 각 村의 사람들이 일제히 응시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本村의 경우 道仰羲元이 응시하니 몹시 부럽다고 하였다. 門中 내에서 初仕 자리를 얻고 大科에 급제한 사람이 있는 것에 대해서 몹시 장하다고 하였다. 宜仁 소식은 季氏의 편지에서 자세히 언급되어 있을 줄로 생각되므로 이 편지에서는 다시 번거롭게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끝으로 狗皮匣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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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80년 이만계(李晩桂) 서간(書簡)

圭範從 旅座 回納。
秋氣益高。懷人政苦。此際
情翰忽到。深慰久別之懷。而
多感不忘之意也。謹審比者
客中體事萬重。
令監政體候康旺。仰慰區區。
而尤有所仰賀者。於此有抱麟
之慶。於彼遂遠遊之願。今年
所得不少矣。數千里經歷處。
雖不能詳知。而平壤擅繁
華之名。鴨綠限南北之界。皆
可謂通國之大觀。此不多讓於
子長之南遊。而況地接胡境。
異言異服。想多有可笑可怪
者。所見所聞。盡收於腔裏。他
日歸後。以破僻巷之寂。如何如何。
四從。劣狀姑依。而親節恒事
添越。遠離情私。焦悶難狀。
奈何奈何。春秋所農。雖不至
大敗。而贖罪則未也。秋科。則各村
可謂齊進。而本村。則道仰羲
元從勇赴。令人健羨。如從。蟄
在窮峽。雖有妄念。而所謂躄
者之勇。嘆何如之。門內初仕
與大科。甚奇壯耳。宜仁
安信。想悉於季氏從書。故更
不煩及。狗皮匣仰托。未知以爲
如何。中心好之。故率口發焉。深
愧於古人不取一介之義。呵呵。餘。
非遠書可旣。都留不宣。
庚辰 九月 念七日。四從 晩桂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