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1월 4일, 愚軒 金養鎭이 흉년에 생활하는 것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고 內行에 대한 의향을 통보해 달라고 당부하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77년(고종 14) 1월 4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흉년에 생활하는 것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고 內行에 대한 의향을 통보해 달라고 당부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은 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서신이 오랫동안 격조하였는데 해가 바뀌니 그리운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고 하였다. 이어 새해를 맞아 査夫人과 이중석, 딸, 堂內 親知, 宗玉[李晩濬] 家의 大小 식구가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김양진 자신은 문밖을 조금이라도 나가면 다리가 힘이 없고 눈이 어지럽다고 하면서, 건강이 나빠져 한바탕 소란이 일어 수습하기 쉽지 않겠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 형님은 痰滯症으로 기력이 떨어졌고 아들들은 감기를 앓고 있다고 하면서,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흉년이 어디나 마찬가지이나 이곳의 좋지 않은 상황이 날마다 심각해져 가고 있다고 하면서, 이중석 쪽에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앞으로 생활하는 방도에 대해 혹 요리한 바가 있느냐고 물었다. 泮村의 소식을 근래 받았는지 묻고, 지난번에 傳便에게서 자신이 서울로 보낸 편지가 전달되지 않고 머물러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하면서 이번 편에 반드시 부쳐 보내라고 당부하였다. 다음으로 이중석의 부인이자 자신의 딸을 데려 오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자신이 그녀를 春間에 데려 오고 싶지만 이중석 쪽의 사정 등을 모르기 때문에 반보기를 정해 통고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번 편에 이에 대해 回示해 달라고 하였다. 龍溪의 祥日에 아들을 대신 보내고 싶었으나 감기를 앓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기에 실행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내일은 반드시 問祥하러 갈 것이니 그곳에 보내는 편지를 이중석이 지체 없이 직접 전달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