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6월 13일, 愚軒 金養鎭이 안부를 교환하고 緬禮 날짜를 통보해 주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77년(고종 14) 6월 13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안부를 교환하고 緬禮 날짜를 통보해 주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은 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오랜 장마를 겪다가 며칠 전부터 비로소 구름이 걷혀 하늘이 보이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 査夫人과 이중석, 자신의 딸의 안부를 물었다. 특히 마을에 돌던 전염병 기운이 깨끗해졌는지도 물었다. 楊叟 老兄의 喪事는 몹시 늙으신 어버이를 모시고 있는 처지에서 심경이 비참할 것인데, 여러 가족들이 모두 마음을 너그럽게 달래고 슬픔을 억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김양진 자신은 형님의 병환이 악화되지 않았으나 집안의 우환이 다단하고 出幕한 아이를 아직 刷入하지 못하였으니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달포 전의 緬禮는 중간에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여 다시 통보하지 못하다가 때가 다 되어 결론이 났기 때문에 이중석이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책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지금 또 부모님 墓所에 대한 緬禮를 준비하고 있는데 달포 전에 玉女峯 아래에 이미 置標하였고 7월 9일로 날짜를 잡았다고 하였다. 길일을 잡은 뒤에 날짜를 당길지 물릴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그날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면 이 날짜에 치르고자 한다고 하였다. 날짜가 바뀌면 다시 통보하겠으나 별다른 기별이 없으면 이 날짜에 치르는 것으로 알라고 하였다. 보리농사가 오랜 장마로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물었다. 한양 소식을 근래 들었는지 묻고, 인편을 구할 길이 없어 편지하지 못하니 답답하다고 하였다. 들을 만한 것이 있거든 와서 전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