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7월 17일, 愚軒 金養鎭이 여러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75년(고종 12) 7월 17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여러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은 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석 달 동안의 전염병 기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또 무더위에 고생하여 헐떡거리며 날을 보내고 있는데 뜻밖에 심부름꾼이 이중석의 편지를 가지고 이르니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편지를 읽고 査夫人과 이중석이 평안하게 지내고 있음을 알았고, 또 편지에서 지난번에 이중석이 복용한 藥의 효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수습하였음을 알 만하겠다고 하면서,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김양진 자신은 종전에 겪었던 일들을 나중에는 웃을 일이 생기리라 생각하여 넘겼는데 지금은 차례로 團合을 이뤘다고 하였다. 그러나 병을 치른 아이들이 하나도 완쾌되지 않았고, 묏자리를 洛川에 정하고 장삿날을 내달 3일로 정했는데 大川이 중간에 막혀 있고 비가 내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달 28일에 運柩하여 始役할 계획이라고 하면서, 허다한 일들이 얽혀 있으니 근심스럽고 괴로운 심사를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하였다. 딸은 비록 대단한 질병은 없으나 중간에 겪은 일들이 매우 후회스러웠고 지금은 조금 정신을 안정시켰으나 그녀의 아이의 나쁜 버릇이 날마다 심해져 잠시도 딸 곁을 떠나지 않으니 필시 모녀가 함께 병이 날 것 같다고 하였다. 또 손을 잡고 보내던 날에 다만 애를 태웠으니 보기에 매우 걱정스러웠다고 하였다. 가뭄 피해를 이중석 쪽에서 현재 면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끝내 형편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였다. 이중석의 從叔 어른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걱정했다고 하면서, 고향에 내려온 그를 자신이 葬禮를 치른 뒤에 찾아가 만나볼 계획이라고 하였다. 科擧 날짜가 머지않았는데 이중석이 편지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니 藥을 복용한 뒤에 먼 길을 가는 것이 어려워 그만두고자 하는 생각이냐고 물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자신을 방문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끝으로, 文稿 印出과 관련하여 종이의 盈縮에 대해 모르고 있으니 後便에 照檢해서 알려 달라고 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