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 9월 9일, 愚軒 金養鎭이 緬禮를 순조롭게 거행하고 딸이 쾌차한 데 대해 기쁜 마음을 표하고 擇日하는 일에 대해 부탁을 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73년(고종 10) 9월 9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緬禮를 순조롭게 거행하고 딸이 쾌차한 데 대해 기쁜 마음을 표하고 擇日하는 일에 대해 부탁을 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은 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전에 부쳤던 편지에 대해 이중석이 답장하지 않은 데 대한 염려와, 이중석이 緬禮를 잘 거행했는지 딸의 차도가 어떤지에 대한 궁금증이 심했던 상황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인편을 통해 이중석의 편지를 받고 매우 놀란 뒤에 査夫人과 이중석 형제가 평안하다는 것, 緬禮를 정해진 날짜에 순조롭게 거행했다는 것, 딸이 쾌차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더구나 이중석의 從叔 令公이 돌아온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건강이 상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욱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김양진 자신은 오랫동안 혼란스런 일에 골몰되어 있다고 하면서, 가을 농사가 집중되는 시기를 맞아 아들과 조카를 멀리 보내어 대신해서 일을 보게 하여 걱정을 쏟다가 지금 안정을 찾게 되었다고 하였다. 형님께서 별 탈 없으시고 식구들이 예전처럼 평안하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擇日紙에 대해서는 이중석이 자신에게 부탁한 이상 사양하지는 못하겠으나 擇日할 사람이 늘 이렇게 轉請하는 것을 싫어하여 精心으로 擇日해 줄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10일 이후에 宜仁과 가까운 곳으로 자신이 가게 되는데 그 기회에 이중석과 그의 從叔을 만나고 싶지만 기필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