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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73.4717-20150630.0625257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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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양진, 이중석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3
형태사항 크기: 24.3 X 60.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3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1873년 6월 9일에 우헌(愚軒) 김양진(金養鎭)이 묘의 이장과 관련하여 김(金) 씨 성을 가진 풍수쟁이 한 사람을 소개하고 그와 상의하라고 당부하기 위해 이중석(李中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편지를 받고 상대측의 안부를 알게 되어 위로가 되나 전염병 유행이 아직 끝나지 않아 건강에 유의하기를 당부했다. 자신의 근황으로는 사촌며느리의 죽음과 장지를 찾고 있는 상황을 알렸다. 이어서 상대측의 무덤 이장에 대해서 좋은 풍수쟁이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며, 집안 장례식 때 그가 오는 날에 맞추어 상대가 방문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873년 6월 9일, 愚軒 金養鎭이 緬禮와 관련하여 金 地師를 소개하고 그와 상의하라고 당부하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73년(고종 10) 6월 9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緬禮와 관련하여 金 地師를 소개하고 그와 상의하라고 당부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달이 넘도록 서신이 없어 이중석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며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사람이 오고 이중석의 편지를 전해 주어 읽으니 마치 만나서 정담을 나누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더구나 근래 더운 날씨에 査夫人이 평안하시고 服中에 있는 이중석이 잘 버티고 있고 딸도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면서, 그 어떤 險歲의 소식이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다만 마을에 번진 전염병 기운이 아직 종식되지 않아 깊이 염려스러우니, 퍼진 곳과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고 기간이 조금 오래되었다고 하여 방비를 늦추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김양진 자신은 집안의 화가 다하지 않아 갑자기 從婦를 잃어 累代 祭祀를 받들던 집안에 제사를 주관할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황량한 온 집안의 광경을 전하였다. 또 葬禮를 날씨가 서늘해지기를 기다려 할 수 없어 현재 地師를 불러 혈자리를 찾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중석의 從叔 令公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은 형세상 불가피한 것이지만 緬禮가 이 때문에 지체되고 있으니 이중석의 심경은 갈수록 뭐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從叔이 왔더라도 이러한 酷暑期에는 결행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事勢를 보아 천천히 도모하라고 당부하였다. 風水地理의 禍福說은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子弟가 어버이를 葬禮 지낼 때 살피고 신중히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김양진 자신은 명당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어 근래 金 地師를 불렀는데 그의 心地와 術法이 몹시 淳厚하고 자못 高明하다고 하면서, 뒤에 緬禮를 추진할 때 미리 통보하여 그의 검토를 거쳐 묏자리를 잡은 다음 일을 도모하고 이전처럼 혼자 하다가 일을 그르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김양진 집안의 葬禮 때 金 地師가 꼭 와서 머물 것이니 이중석이 그때 만약 온다면 상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이중석이 보내 준 菸葉이 자신의 胃를 시원하게 해 줬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3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壻君 謝疏。
省式。經月阻信。方翹首東望。望外人至。兼
得手疏。披復以回。洽如對晤。從審比熱
萱闈體節萬護。
侍餘哀履連支。女阿亦依過。險歲信息。
孰大於是。但閭戒未熄。深所奉慮。幸勿
以距稍間日稍久。弛其備也。婦拙服人。家禍
不殄。遽失從婦。累世承祭之家。尸饋無
人。滿室光景。溢目荒凉。且掩坎之節。未
可待凉生。方邀師求穴。姑未的定。然要
歸於先楸之下。似此時世。何可與人相持
也。從玩令尙未還稅。勢所使然。而
緬奉從此稽緩。哀之情事。去益無謂。
然旣爲尋訪。則似此極暑。有不可輕廷直行。
第觀事勢。徐徐圖之。爲望。地理禍福。未可
準信。而人子葬親。不可不審愼。吾亦積苦
於此者。苦未見靑烏法眼。近邀金師。其心地
術法。極淳厚頗高明。日後營緬之時。須先期
通奇。經眼新占處。然後以爲圖事。勿如前
日之自樹立以僨事也。吾家葬埋時。此師必來
留。哀若臨弔。則可得商議耳。餘。方
發求山行。臨忙。不究式。
癸酉 六月 九日。婦拙 養鎭 疏謝。

菸葉。開人胃氣。銘感銘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