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2월 20일 裵克紹가 안부와 會講에 나가지 못한 마음을 崔孝述에게 전하는 편지
1867년 2월 20일 裵克紹(1819~1871)가 안부와 會講에 나가지 못한 마음을 崔孝述(1786~1870)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배극소는 지난번의 편지로 회강을 한다는 소식을 받고 名理의 논의를 들으려고 했는데 잡다한 일에 얽매여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최효술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건강하고 아이들도 잘 지낼 것이라 생각된다고 하였다. 최효술의 부친이 혼인을 한지 60년이 되는 해를 맞이했는데 무슨 선을 쌓아서 80 먹은 양친을 모실 수 있냐고 하였다. 자신은 어버이를 여의여 부러움이 배가 된다고 하였다. 배극소은 최효술의 마을에 역병이 없어졌는지 물었다. 자신은 예전과 같이 지내는데 遠近의 爻象이 근심된다고 하였다. 지난번의 부탁한 일은 전에 편지로 대강 말했는데 그 후에 끝내 뜻을 돌릴 수 없었다고 하였다. 마땅히 사실을 알려야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인편도 없으니 이 점을 헤아려 달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추록을 써서 최효술의 10촌 편지도 같이 보내니 잘 전해달라고 하였다.
발신자는 배극소로 자는 乃休이고, 호는 默庵이다. 아버지는 裵相觀이고, 어머니는 朴恒敦의 딸 密陽朴氏이다. 3남 중 장남으로 동생 裵德紹와 裵達紹가 있다. 直齋 金翊東 · 定齋 류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성리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으며, 행실이 독실하여 영남의 선비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저서로 『묵암문집(默庵文集)』이 있다.
수신자는 崔孝述로 본관은 慶州이고 자는 穉善, 호는 止軒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崔湜이며, 어머니는 晉州鄭氏로 鄭宗魯의 딸이다. 외할아버지 정종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60년 莊陵參奉에 임명되고, 그 뒤 敦寧府都正을 거쳐 副護軍에 이르렀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邪敎를 극렬히 배척하는 주장을 폈다.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류치명을 비롯하여 李秉夏 · 李敦禹 · 이휘령 · 李源祚 · 孫亮述 등 영남의 문인들과 교유 하였다. 저서로는 『지헌집』 15권이 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