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2월 20일에 裵克紹가 학문 하는 방법과 자세를 이야기하고자 崔孝述에게 보내는 편지
1867년 2월 20일에 裵克紹(1819~1871)가 학문 하는 방법과 자세를 이야기하고자 崔孝述(1786~1870)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배극소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하였다. 지난날 상대방의 삼종 조카 편으로 會講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고자 하였으나 일에 얽매여 가지 못했다고 하였다. 자신은 부모님을 잃고 근심과 병으로 師友와 함께 하지 못하고 또 번잡함을 떨쳐 옛 일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것을 핑계 삼아 타인도 꾸짖지 않아 점점 나태해졌는데 자신의 뜻이 확고하지 않아 중요하지 않은 일에 끌려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극소가 선배의 말을 전하며 인사는 남에게 시켜서 할 수 없으니 누구를 시켜서 할 수 있겠냐고 하였다. 예부터 학문을 하는 자가 학문 이외의 다른 일을 하지 않고 학문만 할 수 있겠냐고 하였다. 일을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학문을 하는 것이라고 하며, 일 처리를 마치고 나서 옛 사람과 같이 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이것을 준칙으로 삼으면 일상생활을 하는데 독서할 시간이 없다고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오히려 게으름에 스스로 안주하고 대충 넘어가는 것이 습관이 되고, 여유가 나지 않으면 책상으로 가지 않는 것을 스스로 책망하고 자책해야 한다고 하며 편지를 마쳤다.
배극소는 程子의 말과 『論語』, 「夙興夜寐箴」의 글을 인용하여 최효술에게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충고를 하였다. 항상 학문만 하는 것은 힘들다고 하며 어떠한 일이 생기면 그 일을 먼저 해결하고 남는 시간에 학문을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발신자는 배극소로 자는 乃休이고, 호는 默庵이다. 아버지는 裵相觀이고, 어머니는 朴恒敦의 딸 密陽朴氏이다. 3남 중 장남으로 동생 裵德紹와 裵達紹가 있다. 直齋 金翊東 · 定齋 류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성리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으며, 행실이 독실하여 영남의 선비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저서로 『默庵文集』이 있다.
수신자는 崔孝述로 본관은 慶州이고 자는 穉善, 호는 止軒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崔湜이며, 어머니는 晉州鄭氏로 宗魯의 딸이다. 외할아버지 정종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60년 莊陵參奉에 임명되고, 그 뒤 敦寧府都正을 거쳐 副護軍에 이르렀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邪敎를 극렬히 배척하는 주장을 폈다.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류치명을 비롯하여 李秉夏 · 李敦禹 · 이휘령 · 李源祚 · 孫亮述 등 영남의 문인들과 교유 하였다. 저서로는 『지헌집』 15권이 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