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1월 28일에 郭喆愚가 전염병에 대한 걱정과 함께 안부를 물으며 서원의 文會에 관한 일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67년 1월 28일에 郭喆愚가 전염병에 대한 걱정과 함께 안부를 물으며 서원의 文會에 관한 일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서두에는 新正이 이미 지났는데, 한번 안부를 묻는 것이 아직 지체되었다고 하였다. 士心 戚丈이 소매에 편지를 보내와 편지를 읽어보니, 마치 존좌를 만나 뵌 것 같다고 하였다. 초봄에 어버이의 안부가 신의 보위를 받으시고 어버이를 모시는 형제들의 안부가 진중하고, 아들과 형제들도 또한 잘 지내고 있음을 알았으니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이어 우환과 가까이 하고 있다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서원의 문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문회는 우리 마을의 큰일이지만 물력이 넉넉하지 못하여 모든 일이 군색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한편 전염병이 또한 방자하여 근심 걱정이 적지 않지만 서원 아래 한 구역이 청정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그런 뒤에 약간의 들어갈 물건이 이미 배포에 이르렀으니 진퇴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것을 헤아려 달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해가 바뀐 뒤에 마땅히 찾아가 뵈어야 하지만 다음 달 초에 모시고 갈 행차가 있으므로 이처럼 옮겨서 머무를 뿐이라고 하였다.
발급인인 곽철우에 대한 정확한 생몰연대를 파악할 수 없고, 수취인은 대구 옻골 마을의 경주 최씨 문중의 인물인 정도만 알 수 있다. 발급인 자신을 ‘損弟’ 즉, 친구에게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수취인과 서로 친구관계임을 알 수 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