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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곽철우(郭喆愚)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67.0000-20150630.K2714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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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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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곽철우, 최효술
작성시기 1867
형태사항 크기: 31 X 3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7년 곽철우(郭喆愚) 서간(書簡)
1867년 3월 3일에 곽철우가 만남을 요청하기 위해 최효술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 가족들의 안부와 지내시는 곳의 역병이 나아졌는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적고 있다. 이어서 지난번 당신께서 강하신 내용을 보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물어보고자 하니 내일 찾아뵙겠다고 하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67년 3월 3일에 郭喆愚가 만남을 요청하기 위해 崔孝述에게 보낸 편지
1867년 3월 3일에 郭喆愚가 만남을 요청하기 위해 崔孝述(1786∼1870)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추운 날씨에 당신의 부모님께서 잘 지내시며 부모님을 모시는 일상생활도 별다른 문제가 없고 촌의 역병도 점점 나아질 조짐이 있다고 하니 위로가 된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있다. 자신은 별다른 탈이 없고 촌도 또한 역병이 나아졌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상대에게 할 말을 적고 있다. 당신께서 강하신 내용을 정리하셨는데 이는 형과 같이 학문이 축적된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은 강의한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감히 그것이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다고 하며 만약 당신을 만날 수가 있다면 내일 찾아가 궁금한 점을 묻고자 하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이 편지의 발급자인 곽철우의 경우 인명은 확인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가 계속적으로 백불암 가문에 편지를 보냈으며 특히 1866년 11월 4일 곽철우가 보낸 편지 등을 통해서 이 편지의 수취자가 최효술인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수취자 최효술은 본관은 경주, 자는 穉善, 호는 지헌이며, 부친은 崔湜이고, 모친은 晋州鄭氏이다. 立齋 鄭宗魯의 외손이다. 정종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60莊陵參奉에 임명되고, 그 뒤 敦寧府都正을 거쳐 副護軍에 이르렀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邪敎를 극렬히 배척하는 주장을 폈다.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柳致明을 비롯하여 李秉夏李敦禹이휘령李源祚孫亮述 등 영남의 석학들과 학문적인 교유가 있었다.
이 편지는 과거 선비들이 학문을 교류하는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교류를 통해 자신의 발전을 물론 지역 사회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특히 영남지역은 학맥과 혼인을 통해 향촌사회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유지 ․ 강화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인호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7년 곽철우(郭喆愚) 서간(書簡)

謹拜上謝書。
瞻望高軒。無日不興懷。承拜手畢。
感喜交至。謹惟猶寒。
壽堂軆候。一向神衛。
侍餘動止。承歡珍重。村下忌警。有向淨
之漸。實不勝區區者慰。弟。身無顯頉。村亦
安淨。顧此險歲。是爲一幸。講錄近至修
筆。此事。固非人之所能。而如非兄素所畜
積者。何如是敏速耶。弟。本不解講說。何
敢與論於可否。而若有相議於
凾筵之前。則以明日。當趨晉矣。餘在面敍。姑
不備。上謝禮。
丁卯 三月 三日。損弟郭喆愚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