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2월 3일에 崔命德이 叔主의 안부를 묻고, 살 수 있는 田土의 값을 매기기가 어려운 까닭에 仲叔主를 뵙고 말씀드릴 일이 몇 가지 있는 것을 전하기 위해 쓴 편지
1863년 2월 3일에 崔命德이 叔主의 안부를 묻고, 살 수 있는 田土의 값을 매기기가 어려운 까닭에 仲叔主를 뵙고 말씀드릴 일이 몇 가지 있는 것을 전하기 위해 쓴 편지이다.
편지의 초반에는 인편이 막혀 그리움이 새해를 맞아 더욱 절실하다고 하였다. 이어 뜻밖에 감사하게도 중씨숙주가 멀리 온 김에 전해준 답장을 받았는데, 새해에 안부가 더욱 장수하시고 자식들과 손자들이 각각 잘 지내는 것을 알았으니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大耋의 기력이 항상 편치 않고, 집안의 우환이 거듭하여 위 아래로 속 끓이고 애가 타는 것을 줄일 수 없다고 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뜻을 둘 겨를이 없다고 하였다. 그는 곧이어 하나의 맥을 잇는 선대의 위업을 이어받아 발전시킬 형편이 못되니 다만 스스로 크게 탄식할 뿐이라고 하였다.
한편 지난겨울 覆試에 시험을 치른 유생들이 이제야 남의 말에 따랐다는 것을 알았는데 추위에 겁먹고 임지를 버리고 돌아간 것이 너무 서운하다고 하였다. 또한 한스러운 것은 일찍 알아서 達成에 나아가 보러가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편지 내용의 마지막 부분에는 살 수 있는 전토는 값을 매기기가 어려워서 중숙주를 뵙고 말씀드릴 일이 몇 가지 있다고 하면서 뒤에 오는 편에 다시 여쭙겠다고 하였다. 중숙주가 멀리 계시다가 갑자기 행차를 돌린 것은 쉽지 않는데, 매우 서운할 뿐이라고 전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최명덕(1822~1867)은 자는 敬立이고, 호는 愛日齋, 본관은 慶州이다. 품계는 通德郞이다.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아름답고 심오한 것을 精深하게 연구하여 선비들 사이에 높은 기대가 있었다. 유고가 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