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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최항술(崔恒述)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63.0000-20150630.K2714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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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최항술, 최효술
작성시기 1863
형태사항 크기: 24 X 3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3년 최항술(崔恒述) 서간(書簡)
1863년 1월 4일에 최항술이 증손을 본 것을 축하하기 위해 족형인 최효술에게 보낸 편지이다. 백불암 후손들의 지역 활동과 인물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1863년 1월 4일에 崔恒述(1855~1929)이 曾孫을 본 것을 축하하기 위해 族兄인 崔孝述(1786~1870)에게 보낸 편지
1863년 1월 4일에 崔恒述이 曾孫을 본 것을 축하하기 위해 族兄인 崔孝述(1786~1870)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식들의 교육을 맡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식들이 병과 잡무로 별도로 인사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수취인 최효술옻골 入鄕祖인 최동집(1586~1661)의 9대손으로, 百弗庵 崔興遠의 曾孫이자, 立齋 鄭宗魯의 외손자이고, 嶺下三傑의 한 분인 近齋 崔湜(1762-1807)의 아들이다. 字는 穉善이고, 號는 止軒이다. 1860莊陵參奉에 임명되었고, 그 뒤 敦寧府都正, 副護軍을 역임했다. 柳致明을 비롯하여 李秉夏, 李敦禹, 李源祚, 孫亮述등과 같은 영남의 석학들과 교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道東書院의 원장을 역임했었고, 『止軒先生文集』 15권 7책을 남겼다.
발급자 최항술은『지헌선생문집』권 6에는 「答族弟敬仲(恒述)」라는 편지가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자가 敬仲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초명은 恒祿이고 靈山辛氏인 辛昌大의 딸과 혼인을 맺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박세욱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3년 최항술(崔恒述) 서간(書簡)

兄主前 上候書。謹封。
頃伏承下書。憑伏審抱得大丈夫曾孫。若
非積累之漸於能致。如是繁延之效耶。滿室
慶幸。不見可想。同慶之地。迎新獻賀。豈有過
於此也。昨拜昌寧兄主。詢伏審
靜中道體。益膺難老。允從與群彧。各得
穩侍。諸致均休。伏慰賀區區無任之至。族弟。
當此送迎之際。尤不勝孤露之感。而且長兒偶
以脚病。委痛者。迄今四五日。而尙未得減勢。見甚
悶悶。渠性雖似疎闊於文字上。然亦未嘗不向慕
於座下。而每汨於渠之親病間。以渠病又縶於
冗務。一不遂誠。此莫非渠父之過也。我旣爲棄物。而
所欲者使兒曹涵泳於座下。以贖渠父之恥矣。
亦不從心。憐歎無已。伏願兄主勿以人棄之時。
時下誨施之。以爲人之方。如何。兒病如石。故奔走於
於渠之兄病。未得替送。罪悚罪悚。餘不備。
伏惟。
癸亥 元月 初四日。族弟 恒述 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