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1월 11일, 鄭裕益 외 1인이 상대의 관직 제수 소식에 대해 축하를 하고 안부를 묻고 근황을 알리기 위해 경주 최씨 문중의 인물에게 보낸 편지
1861년 1월 11일에 鄭裕益 외 1인이 상대의 관직 제수 소식에 대해 축하를 하고 안부를 묻고 근황을 알리기 위해 경주 최씨 문중의 인물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음 상대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새해를 맞이하니,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가 임금의 명을 받아 관직에 제수된 사실에 대해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지위가 있다[有德者必有位]"고 하며 축하하였다. 그리고 상대와 상대 아들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의 경우는 집안의 화가 거듭 혹독하여 지난 가을에 사촌아우[從弟]의 喪을 당하였고, 70의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도 좋지 않은 등의 근황을 알렸다.
발급인인 정유익과 鄭裕基는 자호나 이력 등이 자세하지 않다. 대구 옻골 경주 최씨 백불암 문중의 여러 서간문 자료들 가운데는 정씨 측과 관련된 문건이 많다. 혼반을 따져보면 晉州鄭氏, 迎日鄭氏와의 관계가 많은데, 발급자는 이 두 문중 가운데 한 집안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본문에 쓰인 관계호칭용어를 보면, 두 사람 모두 ‘姻下生功服人’이라 칭하고 있다. ‘姻下生’은 혼인관계가 있는 집안의 사람으로 상대보다 연배가 어린 것을 이른다. ‘功服人’의 경우 功服을 입고 있는 상황을 지칭하는데, 이는 본문에서 언급한 종제의 상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종제라고 표현하고 있어서 大功인지 小功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이 편지는 피봉이 없다. 따라서 수취인이 누구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본문에 상대의 관직제수 소식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 편지의 발급연월일이 신유년 1월 11일이라는 점으로 미루어보자면, 百弗庵 崔興遠의 증손인 止軒 崔孝述(1786∼1870)이 庚申年(철종11, 1860)에 遺逸로 莊陵參奉에 제수된 이력이 있다. 본문에 유일로 천거된 정황을 설명한 것으로 보이는 "첩첩산중 골짜기에 계신 당신의 명성이 조정에 까지 알려지다[九皐聲徹]"라는 표현과 경신년의 다음인 신유년의 연초에 이 소식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므로, 여러 정황상 수취인은 최효술로 추정하였고 따라서 발급연도 역시 1861년으로 보았다. 최효술은 본관은 경주, 자는 穉善, 호는 지헌이며, 부친은 崔湜, 모친은 晉州鄭氏로 立齋 鄭宗魯의 딸이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