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 1월 29일에 孫學秀가 선조 문집과 관련된 일을 부탁하기 위해 崔孝述에게 보낸 편지
1858년 1월 29일에 孫學秀가 선조 문집과 관련된 일을 부탁하기 위해 崔孝述(1786~1870)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할머니의 상과 관련된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자신은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에게 의지하고 살고 있었는데 하늘이 또 재앙을 내려 할머니가 돌아가시니 슬픔을 이길 수가 없다고 하고 있다. 앞서 편지를 보내 위문하셨는데 다시 그 편지를 읽으니 더욱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상대방과 자신의 안부를 언급하고 있다. 먼저 상대방과 그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간신히 지내고 있고 장남은 어린 나이임에도 고질병에 걸렸다고 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둘째 아들이 자신의 기대대로 잘 자라 다행스럽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자신이 부탁할 일을 언급하고 있다. 이번에 선조의 문집을 간행하려고 하는데 당신께서 한번 교정해 주시기를 부탁하고 있다. 또한 당신의 증조할아버지인 백불암 문집은 이미 반질했다고 하였는데 1부를 보내주시기를 부탁하고 있다.
발급자에 대한 자세한 행적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백불암과 자신의 관계를 戚從孫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일직손씨의 자손으로 보인다. 최흥원은 孫命大의 딸과 혼인을 맺었다. 손명대는 본관은 一直, 자는 則天,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孫必億이다. 1697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진도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이인좌의 일당 鄭希亮을 토벌하여 경상좌도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다. 이후 1733년에 제주목사로 임명되었다.
수취자 최효술은 본관은 경주, 자는 穉善, 호는 지헌이며, 부친은 崔湜이고, 모친은 晋州鄭氏이다. 立齋 鄭宗魯의 외손이다. 정종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60년 莊陵參奉에 임명되고, 그 뒤 敦寧府都正을 거쳐 副護軍에 이르렀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邪敎를 극렬히 배척하는 주장을 폈다.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柳致明을 비롯하여 李秉夏 ‧ 李敦禹 ‧ 이휘령 ‧ 李源祚 ‧ 孫亮述 등 영남의 석학들과 학문적인 교유가 있었다.
이 편지는 영남 사대부 가문간의 교류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영남의 사대부들은 학맥과 혼인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 강화하였다. 백불암종중과 일직손씨의 경우 혼인을 통해 가문의 교류를 맺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