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4월 망일에 사촌인 金養巽, 金養謙이 안부를 묻기 위해서 崔孝述에게 보낸 편지
1856년 4월 망일에 사촌인 金養巽(1788~1864), 金養謙이 안부를 묻기 위해서 崔孝述(1786~1870)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당신의 편지를 받아 정다운 정을 느낄 수 있었으나 자신은 나이가 많아 당신이 계신 곳에 갈 수 없으니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仙源의 딸이 죽었다고 하니 그 집안은 잘 견뎌내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자신은 작년 12월에 막내 형수의 상을 당하고 종씨의 상을 당해 쓸쓸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임천의 제사는 영남의 큰 행사인데 분열이 발생하여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문중에 일은 듣기에 시끄러워질 수가 있으니 다른 방법이 있는가를 묻고 있다. 끝으로 빙계서원의 통문을 뒤늦게 보내니 당신에 뜻에 부합하는지를 묻고 부의금 2민을 보내니 잘 전달해 달라고 하고 편지를 마치고 있다.
발급자 김양손은 본관은 안동, 아버지는 金川進이다. 김천진(1759~1841)은 崔湜의 사위로 아버지는 장령 金宗發이고 자는 順光, 호는 沙村이다. 李憲周, 崔興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 연구와 자기수양에만 매진하였다.
수취자 최효술은 본관은 경주, 자는 穉善, 호는 지헌이며, 부친은 최식이고, 모친은 晋州鄭氏이다. 立齋 鄭宗魯의 외손이다. 정종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60년 莊陵參奉에 임명되고, 그 뒤 敦寧府都正을 거쳐 副護軍에 이르렀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邪敎를 극렬히 배척하는 주장을 폈다.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柳致明을 비롯하여 李秉夏 ‧ 李敦禹 ‧ 이휘령 ‧ 李源祚 ‧ 孫亮述 등 영남의 석학들과 학문적인 교유가 있었다.
이 편지는 친척끼리 안부와 사정을 묻는 내용으로 영남 사대부의 교류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발급자인 김양손 가문과 최효술 가문은 할아버지 대부터 학문적 연관을 맺고 있었으며 아버지 대 부터는 혼인을 하였고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