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10월 10일, 崔範鎭이 마을 앞의 獨山이 鄭吏에게 넘어간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경주 최씨 문중에 보낸 편지
1855년 10월 10일에 崔範鎭이 마을 앞의 獨山이 鄭吏에게 넘어간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경주 최씨 문중에 보낸 편지이다.
내용으로는, 먼저 초겨울의 안부를 묻고 집안의 끊이지 않는 우환으로 근심 중에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이어서 어제 國谷 사람이 마을 앞의 獨山을 鄭氏인 아전에게 팔았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 산은 講舍의 案山이고 溪亭의 主山이 되기 때문에 계정에 해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禁葬하는 법은 先塋의 숲뿐만 아니라 또한 선조의 유허에도 있으니 좌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발급인인 崔範鎭(1804~1884)은 본관은 慶州, 자는 知重이고, 부친은 崔興岐, 모친은 月城李氏, 배위는 安東權氏로 權應燮의 여식이다. 이 편지에는 피봉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취인을 명확하게 기재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범진이 본인의 호칭을 族末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수취인과 서로 친족 관계이며, 자신이 상대방보다 항렬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族末은 친족 간에 항렬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자신을 낮추어 겸칭하는 말로, 항렬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는 族下라고 쓴다. 따라서 이 편지의 수취인은 대구 옻골마을의 경주 최씨 문중의 인물로 시기상 百弗庵 崔興遠의 증손인 崔孝述(1786∼1870)일 것으로 추정된다. 최효술은 본관은 경주, 자는 穉善, 호는 止軒이고, 부친은 崔湜, 모친은 晋州鄭氏, 외조부는 立齋 鄭宗魯이다.
편지에서 언급된 溪亭은 최흥원이 옻골 입향조이자 5대조인 대암 崔東㠍(1586~1664)을 추모하고 강학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聾淵書堂을 말한다. 대청 북면에 ‘溪亭幽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어서 이 건물을 溪亭이라 칭한 것으로 보인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