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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정윤휴(鄭倫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53.4723-20150630.K271400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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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정윤휴, 최효술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작성시기 1853
형태사항 크기: 29.5 X 3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53년 정윤휴(鄭倫休) 서간(書簡)
1853년 9월 20일, 정윤휴가 상을 당한 집안 상황을 최 생원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정윤후는 아들 상을 당한 상황에서 그저 어린 손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버티고 있다고 하였다. 손자들은 껍데기만 남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둘째 손부가 근행을 하는데 흉년에 식솔들을 떠나보내어 남들이 어떻게 볼지 걱정이 된다며 편지를 마쳤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53년 9월 20일 鄭倫休가 상을 당한 집안 상황을 崔孝述에게 전하는 편지
1853년 9월 20일 鄭倫休가 상을 당한 집안 상황을 崔孝述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정윤후는 둘째 편으로 崔生員의 집안사람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였다. 복을 입고 있는 자신은 예전과 같이 지내고 있지만 마음 속 회포를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하였다. 손자들은 겨우 껍데기만 남은 형상을 하고 있고, 孫婦는 옛날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자신은 늙은 처지에 어린 손자를 마음에 두고 나날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둘째 손부의 覲行하는데 흉년에 식솔들을 떠나보내어 남들이 보고 듣는데 놀라지 않겠냐고 걱정을 하며 편지를 마쳤다.
편지를 통하여 최 생원을 哀라 칭하고 자신은 服弟라 한 것을 보아 둘 다 상을 당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또 정윤휴가 弟를 사용하여 상대방 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자와 손자의 처에 대한 상황만 나열 한 것으로 보아 정윤휴가 아들 상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발신자는 정윤휴로 烏川鄭氏이고 永川에서 세거하였다. 오천 정씨는 延日鄭氏, 迎日鄭氏와 같다. 현재는 영일 정씨로 통일하여 사용되고 있다. 영일의 고 지명은 오천이고 정윤휴의 다른 편지에 ‘오천’이라 표기되어 있어 오천 정씨라고 하였다. 수신자는 崔孝述정윤휴와 혼반관계에 있다. 1842년 10월 17일 崔氏 집안에 혼서를 보냈고 또 족보를 보면 오천 정씨인 鄭致周가 그의 사위로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순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53년 정윤휴(鄭倫休) 서간(書簡)

崔生員 哀座 執事。
疏上。省式謹封。
生式。日前。因家仲歷候而歸。伏聞邇
來霜令。
侍奠哀體候。以時支衛。子舍僉侍服履。佳
勝。庇下都節。均吉。仰慰區區不任之至。服弟。
昔狀今依。而有時心懷自難按注。且孫兒
輩欒欒之狀。堇存形殼。悶憐奈何。孫婦
姑依度了。而孩孫。氣宇豊完。可觀日新。
朝夕就抱。足爲膝下之珠。此是老境
强意處耳。仲孫婦覲行。是固情
理。而荒歲分眷。或不爲瞻聆之所駭耶。
因此便。草草。付候耳。餘不備疏禮。
伏惟
哀照。
癸丑 九月 二十日。服弟 鄭倫休 疏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