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년에 藏待書院에서 葛庵 李玄逸의 復官 上疏 문제로 榮川, 豊基, 醴泉의 鄕校로 보낸 通文
1843년에 藏待書院에서 葛庵 李玄逸(1627~1704)의 復官을 요청하는 上疏를 올리는 문제로 榮川, 豊基, 醴泉의 鄕校로 보낸 通文이다. 본 통문은 52명이 연명하고 있다. 이번 상소는 廬江書院에서 보낸 통문에 힘입어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장대서원에서 벌인 모임에서 상소를 추진할 임원을 정하였고, 10월 25일에 다시 龍宮에 있는 三江書院에 모여서 상소를 올리는 행차를 정돈하려고 하는 중이다.
본 통문에서는 ‘天運은 떠나가면 반드시 돌아오는 것이고, 斯文은 어두워지면 다시 밝아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현재가 이현일 복관을 실현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10월에 여러 선비가 한양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영남 전체가 힘을 보태어 이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비록 기한이 너무 급박하지만 상소를 올리러 떠나기 전에 재물을 都廳所에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문서 좌측 하단에는 본 통문의 전달 방법 등에 대한 사항이 부기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즉 이번의 상소 행차는 기일이 매우 촉박하니, 이 통문은 급히 각 읍에 전하라는 것, 각 읍에서 거둔 돈은 빨리 해당 지역 都廳所로 수합하라는 것, 그리고 해당 지역 도청소는 기한 내로 여정을 출발하는 道會所로 보내라는 것, 儒生名帖은 모두 성책하여 보내라는 것이다.
보내라는 儒生名帖은 통문 좌측에 ‘葛庵先生請給牒疏 把任記’라는 제목으로 성책되어 있다. 여기에는 疏首 등 각 임원의 성명과 각 읍에서 수합한 돈의 규모 등이 정리되어 있다.
1차 작성자 : 명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