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년 6월 27일, 崔象龍이 안부를 주고받고, 서울행 때 있었던 일들과 손자의 죽음 등의 근황을 알리고자 옻골의 최 씨 댁에 보내는 편지
1836년 6월 27일에 崔象龍(1786~1849)이 안부를 주고받고, 서울행 때 있었던 일들과 손자의 죽음 등의 근황을 알리고자 옻골의 최 씨 댁에 보내는 편지이다.
처음 상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 하면서 상대의 三從氏(8촌 형제)를 통해 안부를 전해 들었다고 하였다. 특히 상대측의 이사하는 노역이 끝나 현재는 편안해졌다는 소식에 대해 매우 축하하였다. 자신의 경우는 쇠약한 몸으로 서울행을 떠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누이를 만났던 일, 尙州 愚山의 간행소에 체류하며 문집의 교정을 본 일, 오랜 장마로 물이 불어난 상황에서도 무사히 집에 도착한 일 등의 근황을 알렸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자 자신의 어린 손자의 죽음을 겪게 되어 세상사에 원만함을 얻기란 어려운 것 같다고 하며 슬픔 감정을 표현하였다. 이외에도 水災를 당한 근황과 상대 外叔의 병에 대한 걱정, 白紙 거래에 대한 상황 등의 사연들을 적고 있다.
발급인인 최상룡은 본관은 경주, 자는 德容, 호는 鳳村이며, 부친은 崔興漢, 立齋 鄭宗魯의 문인이다. 1822년 式年試 생원에 입격하였다. 1823년 영남만인소 때 疏首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최상룡은 상대에 대해 ‘罪族末’이라고 표현하였는데, ‘罪’는 자신이 親喪을 당했을 경우 쓰는 용어이고, ‘族末’은 친족의 서열 끄트머리에 있다는 표현으로 일종의 겸칭이다. 피봉에 보이는 ‘江洞’은 대구 봉무동의 옛 지명으로 대구 옻골과 함께 경주 최씨의 세거지이다. 따라서 이 편지는 강동에 사는 경주 최씨 최상룡이 친족인 옻골의 경주 최씨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기상 百弗庵 崔興遠의 손자인 止軒 崔孝述(1786~1870)일 가능성이 높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또한 본문에 등장하는 ‘우산’은 晉州鄭氏의 세거지로 愚伏 鄭經世 이하 입재 정종로의 자손들이 세거하고 있는 지역이다. ‘우산의 간행소에서 문집 교정을 본 일’은 최효술의 외조부가 정종로인데, 이를 통해 경주 최씨와 진주 정씨 간의 혼반관계로 인해 최상룡이 우산의 문집 교정에 간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