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3년 10월 15일 표제인 鄭鎭曄이 안부를 묻기 위해 崔孝述에게 보낸 편지
1833년 10월 15일 표제인 鄭鎭曄이 안부를 묻기 위해 崔孝述(1786~1870)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번 저희 아버지의 상으로 숙형께서 직접 오셔서 위로하시고 편지를 보내 위문하시니 감사드린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 당신 댁의 仲母의 기력은 편안하시고 형제분들도 편안하다고 하니 위로가 된다고 하고 있다. 다만 그대 삼종의 아이의 병이 심하다고 하니 걱정스럽다고 하고 있다. 끝으로 자신의 사정을 전하고 있다. 자신은 제사가 끝나고 나니 마음이 더욱 아프다고 하였다. 죄송하게도 숙형께서 와서 며칠을 머물렀는데 상 중이라 정답게 안부를 묻지 못하고 이별하게 되었으니 마음이 더욱 안 좋다라고 하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추록에는 정신이 없어 각각 편지를 쓰지 못하고 이 한 편지를 써서 보내니 여러분들께서는 돌려 보시고 잘 이해 해주기를 부탁하고 있다.
발급자의 경우 상세한 인명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과 최효술의 관계를 表弟, 內兄 이라고 표현한 점을 들어 정종로 가문의 자손으로 파악된다. 최효술의 아버지 최식은 정종로의 딸과 혼인을 하였다. 수취자 최효술은 본관은 경주, 자는 穉善, 호는 지헌이며, 부친은 崔湜이고, 모친은 晋州鄭氏이다. 立齋 鄭宗魯의 외손이다. 정종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60년 莊陵參奉에 임명되고, 그 뒤 敦寧府都正을 거쳐 副護軍에 이르렀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邪敎를 극렬히 배척하는 주장을 폈다.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柳致明을 비롯하여 李秉夏 ‧ 李敦禹 ‧ 이휘령 ‧ 李源祚 ‧ 孫亮述 등 영남의 석학들과 학문적인 교유가 있었다.
이 편지는 백불암종중과 다른 영남가문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최효술의 경우 어머니는 정종로의 딸이었으며 그 자신 또한 외할아버지인 정종로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었다. 이를 통해 이 두 가문은 학맥과 혼인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