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2월 20일에 崔象龍(1786~1849)이 안부를 묻기 위해 報本堂 재사에 보낸 편지
1827년 2월 20일에 崔象龍(1786~1849)이 안부를 묻기 위해 報本堂 재사에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바빠서 선조의 제사에 갈 수 없음을 밝히고 아들의 冠禮에 상대가 왕림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내용이다. 특이한 것은 宗家에서 관례에 필요한 용품으로 보이는 밤과 대추 1되를 요청하고 있다.
최상룡은 字는 德容이고, 號는 鳳村으로 族兄인 漆室 崔華鎭과 立齋 鄭宗魯(1738-1816)에게 수학하였고, 특히 입재를 통해 大山 李象靖(1710~1781)의 시각을 배워 폭넓은 학문적 성향을 견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報本堂"은 최동집을 추모할 목적으로 1742년 건립된 것이고, "강동"은 바로 江東(대구 동구 봉무동)으로, 최상룡이 강론하던 곳이다. 그가 강론하던 초가는 1875년 사림에서 鳳舞亭으로 새로 지어 지역의 유일한 공공장소로 역할 하였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박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