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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최상룡(崔象龍)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27.2714-20150630.K2714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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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최상룡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작성시기 1827
형태사항 크기: 27.5 X 20.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7년 최상룡(崔象龍) 서간(書簡)
1827년 2월 20일에 최상룡이 안부를 묻기 위해 보본당 재사에 보낸 편지이다. 입재 정종로, 대산 이상정의 후학들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 주목을 끈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1827년 2월 20일에 崔象龍(1786~1849)이 안부를 묻기 위해 報本堂 재사에 보낸 편지
1827년 2월 20일에 崔象龍(1786~1849)이 안부를 묻기 위해 報本堂 재사에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바빠서 선조의 제사에 갈 수 없음을 밝히고 아들의 冠禮에 상대가 왕림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내용이다. 특이한 것은 宗家에서 관례에 필요한 용품으로 보이는 밤과 대추 1되를 요청하고 있다.
최상룡은 字는 德容이고, 號는 鳳村으로 族兄인 漆室 崔華鎭과 立齋 鄭宗魯(1738-1816)에게 수학하였고, 특히 입재를 통해 大山 李象靖(1710~1781)의 시각을 배워 폭넓은 학문적 성향을 견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報本堂"은 최동집을 추모할 목적으로 1742년 건립된 것이고, "강동"은 바로 江東(대구 동구 봉무동)으로, 최상룡이 강론하던 곳이다. 그가 강론하던 초가는 1875년 사림에서 鳳舞亭으로 새로 지어 지역의 유일한 공공장소로 역할 하였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박세욱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27년 최상룡(崔象龍) 서간(書簡)

報本堂 齋所 入納。
江洞 族末 候書。謹封。
講會時霎奉。伏悵不懈。伏惟。
僉齋中起居萬重。伏賀區區不任卑悰。象龍。親候幸無
大添。而顧此一身。常汨於百忙中。愁惱之私。已無可言。而
先祖祀事只隔。亦不能與焉。罪悚千萬。以今二十五日冠
首於家兒。而不自揆量。欲試古禮。昨日請賓於晩村。然
凡節茫不知所爲。若蒙執事是日賁臨。則不但席
上生光。可使主人得免瞽者之摘埴。千萬切仰切仰。餘
客擾。不備狀禮。
丁亥 二月 二十日。族末 象龍 再拜。

宗宅栗一刀棗一刀。仰懇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