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18년 이재인(李載人)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8.4717-20150630.062525700686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재인,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8
형태사항 크기: 28.2 X 38.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8년 이재인(李載人) 서간(書簡)
1818년(순조 18) 6월 19일에 이재인(李載人)이 세미(稅米)를 다시 찧는 과정에서 생긴 흠축(欠縮)을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구하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금에 이르러 이미 곡봉(斛捧)한 뒤에 세미를 다시 찧느라 발생한 흠축을 대뜸 두루 징수하려 한다면 아무리 좋게 말하더라도 협조하지 말자는 여론이 생길 것이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18년(순조 18) 6월 19일에 李載人이 稅米를 다시 찧는 과정에서 생긴 欠縮을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구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8년(순조 18) 6월 19일에 李載人이 稅米를 다시 찧는 과정에서 생긴 欠縮을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구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인편이 와서 전해준 李秉淳의 편지를 받고서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가 이때에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다만 稅政이 거의 완료되었으나 牟糴이 임박하였으니 모든 것이 괴로움을 끼칠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暑泄이 빈발함을 무릅쓰고 일어나 분주하게 일하고 있으니 고민스럽다고 하였다. 다만 관찰사께서 평안하신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고 하였다. 李秉淳가 편지에서 언급하였던, 稅米를 다시 찧는 과정에서 생긴 欠縮은 과연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였다. 지금에 이르러 이미 斛捧한 뒤에 稅米를 다시 찧느라 발생한 흠축을 대뜸 두루 징수하려 한다면 아무리 좋게 말하더라도 협조하지 말자는 여론이 생길 것이라고 하였다. 대체로 戶首가 과연 관에서 詳定한 외에 더 거둔 것이 있다면 하나하나 조사하여 남김없이 받아내어 그 수량대로 營門에 보고한다면, 백성들은 감히 시비를 걸지 못하고 監營도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戶首마다 이미 1냥 남짓의 浮費를 더 거둔 것이 있으니 일일이 찾아내면 흠축난 것에 충당할 수 있고 만약 부족하면 적당한 명색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李秉淳의 의견이 어떠한지 물었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8년 이재인(李載人) 서간(書簡)

禠來。伏承
下書。謹伏審
政體動止候際玆時萬
安。伏慰區區。稅政幾了。牟
糴當頭。罔非
貽惱。爲之伏念萬萬。記下生。暑
泄頻發。强起趨走。苦憫。而祗
以使家氣候之安寧。爲幸。
下敎。稅米改舂縮。果是難處
之事。監色之徵納。雖有初頭不
善捧上之罪。明知其非谷下物。則徵
亦無義。戶首之初不精䎭。果無
無罪之云。而到今旣經斛捧後改舂。
而生縮者。遽爾遍徵。則以好言
之。衆口不無亦叶之論。蓋戶首
果有官詳定外。加斂之物。則一一
行査。無遺推出。以其數報營。欲自
營。當有區處公用爲題。則改舂
區處明日矣。此可謂朝三暮三。而
處事明
正。民誰敢
是非官政。
必無可執
之路。上營
亦無取疵
之路矣。今
待仰禀
后行之也。
每戶首旣
有一兩許。
浮費加斂
者。則一一
披括。足
當此縮。
如或不足。
則是可以某樣區處矣。愚
感之見若是。未知
下執事意亦若何。餘。在
續候。姑不備。伏惟
下察。
戊寅 ◘月 十九日。記下生 李載人 拜手。

日前。見結衙安候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