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 4월 그믐, 崔雲承이 崔雲永을 조속히 돌려보내기를 당부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8년(순조 18) 4월 그믐날에 崔雲承이 근황을 전하고 崔雲永을 조속히 돌려 보내달라고 당부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崔雲承은 李秉淳의 사위인 崔雲永의 형이다. 崔雲承은 본관이 全州, 자가 景受로, 崔鳳羽의 아들이다. 1816년(순조 16)에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건대, 李秉淳이 淸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근래 안부편지를 올렸는데 아직 답장을 받지 못하여 서글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하였다. 이어 맑은 여름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평안하며 서울로 갔다가 언제쯤 돌아왔는지, 여독으로 건강이 손상되지는 않았는지 안부를 물었다. 崔雲承은 어머니께서 항상 기력이 떨어져 계시니 걱정스럽다고 하였으며, 일전에 며느리를 맞이하는 예를 치러 매우 위안은 되나 많이 소란스럽다고 하였다. 仲君(자신의 仲弟이자 李秉淳의 사위인 崔雲永)이 지금 李秉淳에게 갔다고 하면서, 오랫동안 부모 곁을 떠나 있기 어려우니 조속히 돌려 보내달라고 당부하였다. 추신에서는, 聖揆 兄(李彙正)이 그간에 淸安으로 왔는지 묻고 겨를이 없어 그에게 편지하지 못하니 안타깝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