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 8월 6일, 洪奭浩가 客館을 구하는 일과 관련하여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8년(순조 18) 8월 6일에 洪奭浩가 客館을 구하는 일과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면, 수신자인 李秉淳은 淸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秉淳은 1814년(순조 14) 1월에 淸安縣監으로 제수되었다. 먼저, 지난번에 嘉興倉의 下隷 편에 보낸 편지를 李秉淳이 보았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고, 어느덧 가을도 절반이 지난 이때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철따라 건승할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달포 전에 서울로 갔던 李秉淳이 무사히 돌아왔는지도 묻고, 李秉淳의 조카인 上舍 兄이 아직 淸安 관아에 머물고 있으며 가족들도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머니가 여름을 보내는 동안 건강이 악화되어 애가 타는데 科擧 날짜가 임박한 상황이라 모든 일이 신경 쓰인다고 하였다. 자신이 客館을 구하는 일과 관련하여 그동안 만나 얘기하거나 편지로 간청하였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니 李秉淳이 이미 헤아려서 처리했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현재 事勢가 난처하여 同接 중에서 金 友를 먼저 가게 했다고 하면서, 官家에서 유념하여 방 하나를 정해 주면 다행일 것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시비 거리에 대해서는 吏校에게 특별히 분부하여 무뢰배들에게 橫奪 당하는 문제가 없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끝으로 자신은 보름 전에 출발할 듯하다고 하고 그때 나아가 인사드릴 생각이라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